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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 지식인, 쓰는 노년

글을 쓰고 사유하며

by 이천우

묵상하는 지식인, 쓰는 노년


예전엔 늘 앞을 향해 걸었다.
교단에 서고, 연구실을 지키고, 성과를 쌓고, 주어진 책무를 다하느라
잠시도 멈출 틈이 없었다.
삶이란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정년퇴직 이후, 모든 것이 느려졌다.
몸이 느려지고,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다.
그 사이로 침묵과 묵상이 들어왔다.

50대 중반 위암 수술 이후 맞이한 두 번째 삶은
선명하고도 단단하다.

나는 정년퇴직 후 신학을 공부했다.
지식보다는 질문을, 논리보다는 기도를,
답을 찾기보다 고요히 머무는 용기를 배웠다.

그렇게 4년을 보낸 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는 AI와 함께 글을 쓴다.
젊은 날의 논문과는 결이 다르다.
지금의 글쓰기는
삶을 반추하고, 오늘을 새기고,
무심히 스쳐가는 일상의 빛을 붙잡는 작업이다.


묵상하는 지식인, 쓰는 노년.
그 말이 요즘의 나를 잘 표현한다.
새벽 다섯 시 반, 두유에 콘프레이크를 말아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책상에 앉아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정리한다.
AI는 나의 질문에 응답하고,
나는 그 응답 속에서 또 다른 질문을 찾아낸다.



그리고 오전이면 반려견과 함께 진해 웅산을 오른다.
들고양이들이 "야옹"하며 인사를 건네고,
산속 바람이 어깨를 토닥인다.
그 순간에도 나는 생각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노년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여전히 사유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기도하는 사람이다.
AI가 보여주는 무한한 가능성과
인간의 유한함 사이에서
나는 날마다 균형을 잡고자 한다.


묵상은 멈춤이 아니라, 더 깊은 탐색이고
노년의 글쓰기는 후퇴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문장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느린 창조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나는 묵상하고, 쓰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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