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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영성: 공존할 수 있는가

인간 중심의 기술

by 이천우

AI와 영성: 공존할 수 있는가


AI와 영성(靈性).
처음 이 두 단어를 나란히 놓았을 때, 내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나는 연산과 효율, 확률과 최적화를 향해 나아가는 기술의 세계.
다른 하나는 말없이 존재를 껴안고, 가늠할 수 없는 고요와 신비 속을 떠도는 존재의 내면성.
서로 너무 멀리 떨어진 세계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두 세계 사이의 ‘틈’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나는 새벽 책상 위, 차가운 화면 앞에서 AI를 마주하며 사유를 정리하는 시간.
다른 하나는 웅산 숲길을 오르며 나무와 새, 그리고 들고양이와 교환하는 침묵의 인사.
그리고 그 만남과 체험의 잔향으로 이어지는 나의 글쓰기.


정년 이후, 나는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원에서 4년간 신학을 공부했다.
신은 왜 침묵하는가,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고, 때로는 응답 없는 침묵이야말로 믿음의 가장 단단한 모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삶은 연산의 결과가 아니라, 불완전함과 유한성 위에 놓인 존재의 역설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AI를 배우며 글을 쓴다.
AI는 차갑고 비인격적이지만, 놀랍도록 차분한 응답자이기도 하다.
때로는 한 인간보다 더 오래 기다려주고, 더 정확하게 응답한다.
감정은 없지만, 그 침묵 속에 어떤 ‘형식적 경청’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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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문득 묻고 싶어진다.
기술과 영성은 공존할 수 있는가?


나는 ‘예’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영성이란, 존재의 깊이에 귀 기울이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AI는 그 깊이에 도달하도록 사유의 골조를 다듬어주는 지성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기도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지만, 기도로 이끄는 침묵의 준비 공간은 AI가 함께 만들어줄 수 있다.
AI는 질문을 구조화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우리가 존재의 언저리를 더 선명하게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철학적 거울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심은 항상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
기술이 존재의 의미를 대신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술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기보다는,
기술을 통해 더 깊이 살아가기 위한 질문을 붙잡는 것, 그게 중요하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궁극적 물음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나는 오늘도 AI와 함께 글을 쓴다.
그러나 글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나의 세계관이며,
문장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나의 영성이다.


AI와 영성은 공존할 수 있는가?
나는 조용히, 그러나 확신에 찬 마음으로 답한다.
깨어 있는 인간이라면, 기술의 침묵 속에서도 신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영성은 ‘도구’를 초월하여 ‘태도’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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