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쓰는 서사, 북으로 새기는 심장
그날, 무대에 울린 첫 장단은 곧 인당수였다. 우리는 심청의 숨결을 따라, 함께 그 물속을 건넜다.
2025년 5월 30일. 마산문화예술센터 시민극장은 예술이 아닌, 생의 울림으로 떨리고 있었다.
송음 정영자의 강산제 심청가 완창과 김만연의 고법 완북 발표회. 장장 5시간에 걸친 긴 여정은 판소리가 아닌, 한 편의 삶이었다.
공연은 담담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첫 소리가 터지자마자, 관객은 깊은 심연으로 빨려들었다. ‘곽씨 부인의 죽음’ 대목에서는 봄눈처럼 맑고 단단한 소리가 흐르고, ‘심봉사의 실명’에 이르러서는 그녀 자신의 이야기인 듯 절절하게 쏟아졌다. “아이고…” 객석에서 흘러나온 한숨 섞인 탄식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지웠다.
절정은 ‘인당수 투신’이었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심청의 순간, 정영자는 단전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올렸다. 김만연의 북은 그 절박함을 껴안고 함께 떨었다. 그 북소리는 장단이 아니라 심장의 박동 같았다.
침묵조차 소리처럼 느껴지는 시간. 관객은 숨조차 멈춘 채 그 물속에 함께 잠겼다. ‘용궁 환생’에 이르러 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고, 북은 가볍게 여운을 타고 흘렀다.
신비로운 세계를 지나 현실로 돌아오는 심청의 여정은,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잔잔하게 가슴을 적셨다. 이어지는 ‘맹인 잔치’, ‘심봉사 등장’에서는 감정의 파도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정영자의 목소리는 흐트러짐 없이 끝까지 그 여정을 이끌었다. “심봉사 눈을 뜨다.” 마지막 사설이 울리자, 공연장은 조용히 떨렸다. 객석 곳곳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날 정영자는 단지 소리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심청이었고, 인당수였으며, 우리 민족 신화의 한가운데를 걸었다.
그 길을 함께 걸은 이는 고법의 맥을 잇는 김만연. 20여 년간 김청만 명인에게 사사하며 갈고닦은 그의 북놀이는 단순한 리듬이 아닌 ‘소리의 심장’ 그 자체였다.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벼락처럼. 그의 북은 숨 쉬는 듯이 소리와 함께 움직였고, 관객의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은 일제히 일어났다. 그 박수는 환호가 아니었다. “고맙다”, “함께였다”는 마음의 박동이었다. 한 관객이 무대 앞으로 다가와 정영자를 꼭 안았고, 그녀는 눈물 속에서 말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완창할 수 있었습니다.”
정회석 명창은 평했다. “정영자의 소리는 강산제의 정수를 그대로 품었고, 김만연의 고법은 그 소리를 감싸 더욱 빛나게 했다.”
그날의 무대는 전통을 재현한 공연이 아니었다. 함께 걷고, 함께 운 서사. 그렇게 마산문화예술센터에는 ‘소리의 신화’가 다시 쓰였다. 그 신화는 지금도 관객의 가슴 속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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