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는 왜 올챙이 시절을 잊는가

— 사랑, 배신, 그리고 기억의 윤리학

by 이천우
웅산 소류지의 개구리 울음소리


요즘 웅산에 올라 기슭의 소류지를 지나칠 때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물속에서 유영하던 올챙이가 다리를 얻고 땅을 딛게 되는 이 변화는 매년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이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다른 의미를 덧붙인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말은 자연의 이치에서 비롯되었지만, 인간의 삶을 꿰뚫는 통찰을 담고 있다.


개구리는 본래 물속에 산다. 연약한 올챙이로 태어나 꼬리를 흔들며 유영하고, 천적을 피해 물풀 사이로 숨어들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리를 얻고 육지를 딛게 되면 세상은 달라진다. 더 넓고, 더 높고, 더 자유롭다. 이제 개구리는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문제는 바로 그 이후다. 연못 아래에서 떨며 살던 시절은 점차 기억에서 밀려나고, 아니, 애써 외면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연약했고, 의존적이었다는 이유로.


이 단절은 인간 세계에서도 낯설지 않다. 가난하고 불확실한 시절, 함께 울고 웃으며 삶을 버텨낸 조강지처. 그녀의 헌신은 종종 성공 이후 새로운 관계 앞에서 무참히 지워진다. 그것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의 문제이며, 관계에 대한 윤리의 문제다.


미국 시인 도러시 파커는 그 아픔을 냉소와 슬픔이 섞인 시어로 찔러낸다.

By the time you swear you’re his,
Shivering and sighing,
And he vows his passion is
Infinite, undying—
Lady, make a note of this:
One of you is lying.

(당신이 그의 사람이라 맹세할 때쯤이면,
몸을 떨고 한숨을 쉬며,
그는 자신의 사랑이
영원하고 죽지 않는다고 맹세하지요—
숙녀여,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당신들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사랑에 전부를 걸고, 누군가는 그 순간의 열정만을 소비한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그 진심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밝혀진다. 도러시 파커는 그 이면의 배신과 침묵을, 아주 조용히 고발하고 있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말한다.

Love is so short, forgetting is so long.
(사랑은 너무 짧고, 잊는 일은 너무 길다.)


사랑은 끝났을지 몰라도, 그 사랑에 깃든 시간과 희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의 언저리에서 끊임없이 말을 건다. “너는 누구의 도움을 받았고, 누구를 외면했는가?”


결국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는다는 말은 단순한 망각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있게 한 시간에 대한 배신이며, 기억하지 않으려는 의도된 무시다. 그 순간 인간은 과거의 사랑을 소비했고, 현재의 자리를 정당화하며 윤리를 지워버린다. 사랑은 책임이다. 기억은 윤리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도 그 사랑을 가능케 한 시간을 기억할 수 있어야 우리는 인간답다. 성공한 이후에도 올챙이의 떨림을 기억하는 개구리처럼, 우리는 연약했던 시절의 손을 잡아준 이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도 들판의 연못가에선 개구리가 운다. 그 소리는 계절의 울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묻혀 있던 기억의 울부짖음일 수도 있다. 조용히 되묻는다. “너는 너의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느냐?” 이 질문은 결국, 당신이 누구였는지, 누구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는지를 묻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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