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였던 나, 이제는 나로서

― 베이비부머 여성의 70대 생활, 관계와 자아를 다시 마주하다

by 이천우


한국 사회에서 70대에 접어든 여성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태어나 산업화와 도시화, 민주화와 정보화를 온몸으로 지나온 세대다. 집단의식보다는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역할 수행자'로 성장했고,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저녁 무렵에 이르러 그들은 조용히 이렇게 되묻는다. “나는 누구였을까. 지금 나는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물음은 단순한 자아 탐구가 아니다. 이제는 나로서 살아보고 싶은, 오랜 침묵 너머의 작은 외침이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5일 오전 08_12_35.png


베이비부머 여성의 삶에서 '남편과의 관계'는 단지 가족관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생 전체를 이끄는 구조였고, 그 구조 안에서 정서적 안정을 찾은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은 소통의 단절과 고독, 심지어 생존의 무게와도 싸워야 했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 “남편과 대화가 안 돼.”, “나는 이혼하고 혼자 모든 걸 책임지며 살아왔어.” 이런 고백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도, 그들의 고단한 서사 때문이다.


경제적 재량권의 유무 역시 삶의 결을 달리했다. 남편이 벌고 아내가 관리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은 종종 결정권 없는 관리자였고, 그 경계는 결국 노년기에도 이어졌다. 직업을 가졌던 여성은 비교적 안정된 삶을 누렸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남편의 허락 없이는 해외여행조차 결심하기 어려웠다. 경제는 곧 자존감이었고, 자존감은 곧 자율성이었다.


그럼에도 이 세대는 지금, 조용히 변화의 물결 속에 자신을 던지고 있다. AI 예술을 시작한 이도 있고, 친구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늦은 자유를 누리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손주를 돌보며 살지만, 마음속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나를 돌보아야 해.”



이들은 두 세계를 모두 살아낸 사람들이다. 가부장제와 희생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 그리고 지금처럼 주체성과 감정의 표현이 가능한 시대. 이제야 자신을 위한 여백을 조금씩 허락하며 ‘아내였던 나’에서 ‘나로서의 나’로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나 연민이 아니다. 존중, 인정, 그리고 동반자적 지지. 이제는 삶의 후반기를 위한 심리적 회복, 경제적 자립, 사회적 연결을 준비할 때다. 이들의 회복은 곧 우리 사회의 품격이며, ‘나이 듦’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아내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로 살아가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