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돌, 길 8
처음 클라이밍을 배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혼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혼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 때의 나는 다른 사람보다 점수가 얼마나 높게 나오는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을 푸느냐, 못 푸느냐가 중요했다. 항상 눈앞에 놓인 문제와 싸운다고 생각했다. 시험은 혼자 치르고 결과도 혼자 감당하는 거랬다. 친구들이 수학문제 풀이방법을 물으면 ‘해설지 보면 되잖아. 왜 이걸 이해 못 해?’라는 말을 삼키며 설명했다. 학원도 과외도 없이 공부하던 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줄 몰랐다.
볼더링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벽에 붙은 홀드와 나의 대결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풀면 넘어가고, 못 풀면 힘들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오늘 끝내 잡지 못한 돌이 아른거렸다. 욕심이 날수록 분노와 자책이 번갈아 치밀었다. 답지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이 미웠다. 혼자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취미에도 적용되었다. 그렇게 독립적이고 닫힌 마음은 한편으론 단단하게 굳어버린 아이스팩 같아서, 살짝 녹아 말랑하게 퍼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온기와 자극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 하면 달랐다. 모임에 가면 혼자 고민할 겨를도 없이 친절히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 동작이 안된다고 하면 머리를 맞대어 다른 방법을 찾았다. 꼭 한 가지 길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무조건 할 수 있다 응원하고 칭찬했다. 냅다 좋은 말만 퍼붓는 건, 평가도 경쟁도 없이 오직 즐거움으로 뭉친 덕일까. 내겐 너무 낯선 분위기였다. 의도치 않게 적절한 환경 변화가 상전이를 일으켰다. 나는 서서히 바뀌었다.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느슨해졌다. 답이 여러 개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도움을 주고받을 줄 알게 되었다. 끝에 가서 실행하는 건 내 몫이라도, 그전까지의 과정을 누군가와 함께 걸으며 보이지 않는 무게가 덜어지는 걸 느꼈다. 이젠 내게 질문하는 사람도 생겼다. 잘 모르겠더라도 일단 나선다. 또 머뭇거리는 누군가에게는 격려를 건넨다. “할 수 있어요. 저도 했는걸요.” 나를 부드럽게 침범한 말들이 열린 틈새로 나갔다. 도움은 따뜻한 공기를 타고 자연스레 순환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잘한다’는 말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여태까진 그 말을 듣지 못할 것 같으면 도망쳤다. 기대를 저버리거나 별거 아닌 나를 들킬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 했다. 목표를 위해 온 힘을 쏟는 건 결과와 무관하게 멋있다는 걸 몰랐다.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기를 쓰고 매달리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 그 과정을 모두가 즐기고 있다. 그동안 난 투입 대비 산출량만 계산했다. ‘이만큼 노력했는데 실패하면 무능력하다고 여기겠지. 그다지 간절하지 않다면 덜 창피하겠지.’ 그저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클라이밍에서 잘한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 한 번에 푼다? 늘 더 어렵고 풀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다. 겁이 없다? 겁이 나지만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힘이 세다? 팔다리가 길다? 신체적 특징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만약 나를 알고 문제를 안다면?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길을 파악해 가능한 방법으로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성공, 실패라는 결괏값에 대한 우려보다 중요한 건 상황을 직면하는 눈 아닐까. 니부어의 기도문이 떠오른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겸양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 둘을 구분하는 지혜를 갖게 되길.' 잘하는 사람은 그런 지혜를 갖췄다. 바꿀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자꾸 시도해 봐야 안다. 시간이 지나면 능력 밖의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일단 붙어보라고 등을 떠미는 손이 고맙고 반가운 이유다.
여전히 문제를 푼다. 함께 최적의 경로를 찾는 문제, 각자의 답이 있는 문제, 무엇보다 풀지 못해도 괜찮은 문제다. 이제는 잘한다는 말을 계산 없이 받아들인다. 못할 때는 어떻게 나아질까 고민한다. 그럼에도 아직 어렵다고 판단하면 포기한다. ‘언젠가는 되겠지’ 같은 낙관적인 생각을 한다. 몇 번을 뛰어도 안 닿던 걸 그다음 주에 잡은 적이 있으니까. 암장 문 닫기 직전 결국 완등하고는 기쁘게 “퇴근!”이라 외친 적이 있으니까. 때로 쉬어가는 여유와 다시 달려드는 열의를 동시에 품을 수 있었다. 매번 완벽하지 못해 절망하더라도 끝내 성취감이 남았다. 부족한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법은, 혼자 하는 운동을 다 같이 하며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