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더링, 구매하기_ 암벽화의 간택

벽, 돌, 길 7

by 혜투

운동을 하려면 일단, 장비가 예뻐야 한다.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삶을 추구하는 나 같은 경우에는 옷이나 신발을 착용하고 싶어야 겨우 나갈 마음이 생긴다. 게다가 갖기 전에 탐나던 물건도 내 것이 되면 점점 익숙해지며 아름다움에 무뎌진다. 그러니 최대한 내 취향에 부합하는, 가장 예뻐 보이는 장비를 사야 한다. 첫 강습용 수영복도 첫눈에 들어오는 디자인만 보고 무작정 골랐다. 두 겹/한 겹인지 하이컷/미들컷인지 모른 채로 말이다.


볼더링에 필요한 장비는 단 하나, 암벽화다. 첫 암벽화는 선택지가 없었지만 쨍한 빨간색이 마음에 들어 잘 신었다. 그런데 운동을 계속하며 두 번째 장비를 마련할 즈음 고민이 생겼다. 예쁘다고 샀다가 내 몸과 맞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암벽화는 양말처럼 발에 착 붙어 효과적으로 보호와 지지를 해줘야 한다. 그래서 사이즈와 족형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신발이 다르다.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가 제 주인을 찾듯, 클라이머는 암벽화에게 간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직접 신어 보기 위해 종로에 있는 암벽화 매장을 방문했다. 처음 중급화를 산다고 말하자 발 크기를 재고 몇 가지를 추천하셨다. 하지만 생소한 이름들보다 전에 암장에서 봐둔 그 신발이 궁금해서 요청했다. 깔끔한 블랙, 화이트 조합이라 범고래로 불린다고 했다. 기대에 부풀어 직원이 건네는 상자를 소중히 받아 들었다. 뚜껑을 열자 새 신의 반짝반짝함에 눈이 돌아갔다. 그리고 비닐 낀 발을 낑낑대며 욱여넣는데, 이상하다, 홀드를 딛기는커녕 자리에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 추천받은 사이즈에서 세 번이나 올렸지만 내 발과 안 맞는 모양인지 전부 아팠다. 발가락을 가로로 한 번, 세로로 또 한 번 접어 빨래집게로 집은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참고 신다 보면 발에 맞춰 적당히 늘어난다는데, 그 시간을 견딜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럴 순 없어. 네가 신은 그 신, 그 신이 내 신이었어야 해.


나는 눈물을 머금고 다른 종류로 향했다. 발볼이 크거나, 뒤꿈치가 남거나, 신자마자 벗어던지게 되는 것들과 한참 씨름한 끝에 마침내 헐렁하거나 꽉 끼는 부위 없이 (물론 발가락은 한껏 오므린 상태로) 편한 신발을 만났다. 짜잔- 내 손에 쥐어진 지팡이가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선택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도저히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디자인과 색상이 내 취향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나를 단숨에 사로잡는 쪽도 아니고, 볼수록 귀여운 쪽도 아니었다. 빨리 신고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암장에 갈 일은 영원히 없을 게 분명했다. “초크 묻으면 톤업돼서 나름 괜찮아요.” 짙은 카키색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자 직원분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요, 하얀 가루로 얼룩덜룩해질수록 구린 색감이 더 돋보일걸요.’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수많은 신발 박스들이 무색하게 구매를 포기했다. 내게 맞는 다른 신발이 어딘가 있거나 곧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지 모르니까. 첫 번째 신발이 구멍 나고 새 암벽화가 간절해질 때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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