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돌, 길 5
클라이밍장에서 가끔 보이는 티셔츠 뒷면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훈수 환영, 나이스 대환영’. 일행이 아니더라도 벽에 붙은 모두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박수 쳐주는 사람들이 바로 클라이머다. 때로는 격의 없고 즐겁게, 때로는 긴박하고 간절하게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분류해 보았다.
(칭찬형) "나이스, 좋아"
클라이밍장 곳곳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다. 나-이-스! 원래 영어 발음과는 달리 모든 음절에 강세를 준다. 누구나 쉽게 건네는 칭찬이라 나 같은 I 성향이나 초보자에겐 낯설지만 가장 힘이 된다. 주로 완등했을 때나 어려운 홀드를 멋지게(힘겹게) 잡을 때 자동으로 나오지만, 아기의 걸음마 하나하나 칭찬하듯 나아가는 홀드마다 남발하는 경향도 있다. 힐난하고 비웃는 것보다 훨씬 다정하긴 하다. 스스로도 뿌듯한데 외치는 소리 덕에 성취감이 몇 배 커지니 다다익선이다.
(페이스 조절형) "집중, 천천히, 끝까지"
까다로운 구간을 지나거나, 조심해서 균형을 잡아야 할 경우 주로 말한다. 어렵게 막 홀드를 잡고 나면 몸은 흔들리고 숨이 가빠 서두르기 마련이다. 탑 홀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급해지는데 이때 발이 미끄러지는 경우가 잦다. 체력이 바닥나기 전까지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면서도 다치지 않으려면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등반하는 사람의 상태와 속도를 파악해서 신속히 진정시키는 말들이다.
(예언형) "할 수 있다, 다 왔다"
조금 자신 없어하는 사람에게 거는 주문이다. ‘할 수 있다’는 굉장히 무난하고 기초적인 응원이라 성의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웃음이 피식 날 정도로 막무가내, 무지성인 것이 포인트다. “나 이거 못할 것 같은데.."라는 시무룩한 반응에 “아냐, 무조건 할 수 있어! 일단 해봐” 하고 등을 떠미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며 스타트 홀드에만 붙어도 벌써 절반이나 갔다고 소리친다. 또 중간쯤 가서 버거워하거나 망설이는 몸짓이 느껴진다면 이번엔 다 왔다고 무한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산에서 내려오는 이들에게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느냐 물으면 거의 도착했다고 답하듯이 말이다. 올라가는 사람 중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점도 똑같다.
(강요형) "가자 < 가야 돼 < 쳐야 돼 < 내려오지 마"
과몰입하여 응원이 과격해지면 강요형이 된다. 여기서 포기하자니 너무 아깝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을 때 당사자가 얼마나 힘겨워하든 밀어붙이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북돋아지기도 하겠지만 나는 자주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뭘 치고, 어딜 가라는 건가요. ‘해야 한다’는 당위성 문구는 완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인 공동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안돼! 내려오지 마~” 가 들리면 보통 등반하는 사람은 이미 팔이 부들거리고 다리는 휘청이는 상황이라 떨어지고 난 뒤 구경꾼들이 훨씬 더 안타까워한다.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무리하면 본인만 위험하니까, 각자 난이도에 맞는 등반을 합시다.
(마리오네트형)
인형을 조종하듯 자세와 손발의 위치를 일일이 짚어주는 거다. 아직 루트파인딩이 미숙하다면 남이 하는 걸 영상으로 혹은 직접 여러 번 보아도 따라 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문제를 푼 사람이 최적의 경로를 경험한 후 바로 알려준다면 상당히 효과적이다. 그러나 막상 벽에 올라 지시를 듣는다면 높은 확률로 좌우가 헷갈리고 홀드가 안 보여 헤맨다. 벽과 가까울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초크 범벅이 된 홀드는 원래 색을 잃어버린다. “아니! 왼발 말고 오른발! 거기 볼륨 옆에 검은색 조그만 거 있잖아!” 못 알아듣는 서로가 답답해 소리치게 된다. 그러나 내려오면 금방 뻘쭘해지니까 심하게 화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