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돌, 길 4
클라이밍의 기본자세는 삼지점이다. 손과 양발이 삼각형의 각 꼭짓점을 이루며 골반에 무게 중심을 둔다. 이동하기 위해 한 점이 떨어지면 재빨리 다시 균형을 잡는 일이 거의 전부다. 어쩌면 클라이밍을 ‘잡기 놀이’로 부를 수도 있겠다. 홀드 똑바로 잡기, 자세 정확히 잡기, 그리고 균형 잡기. 곡예사의 아슬아슬한 몸짓을 보며 경탄하듯,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제한된 공간에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꽤 어려운 신체 조절 영역이다. 클라이밍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팔에 의지하기엔 벅차 무게를 최대한 몸 전체로 분산시키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심을 잘 ‘옮겨야’ 한다.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는 자주 비틀거리고 넘어진다. 오른발을 떼어 앞으로 내딛을 때 왼발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원리를 체화하기 전까진 그렇다. 이제 평지에서 당연하게 걷고 뛰는 어른도 홀드 위에서는 그걸 새삼스레 되새긴다. 특히 상하좌우로 균형을 잡는데 집중한 밸런스 문제는 기울어지고 불편한 발 홀드 위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두 발뿐 아니라 온갖 부위를 이용해 중심을 잡으려 애써야 한다. ‘무릎을 넘기고, 골반을 보내고, 발을 바꾼다’ 같은 생경한 주문이 입력되면 실제로 출력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 신경이라고는 전혀 없던 나는 몸의 무게추를 이리저리 옮겨 균형을 맞추는 동작들을 실현하면서 점점 코어 근육이 붙었다. 팔다리와 몸통을 잇는 선이 약간 선명해졌을 뿐인데 전보다 단단하게 땅에 닿는 발바닥이 생경했다. 그리고 지금 오른쪽 발끝의 어느 부위로 지탱하는 중인지, 상체를 왼쪽 방향으로 얼마만큼 기울일지 감지하다 보니 섬세한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능력도 늘었다. 늘 저기에 있던 몸을 아주 가까이 끌어당겨온 것 같았다.
우리는 한쪽으로 쓰러지거나 경로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몸을 가눈다. 그런데 정말 꼿꼿하고 곧게만 전진해야 할까. 디딜 곳이 불안하다면 그 위에서 흔들리는 건 당연하지 않나. 휘청이는 힘을 반동 삼아 나아가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밸런스 문제와 정반대로 역동적인 동작들의 연속인 코디 문제에서는 일부러 균형을 무너뜨리며 생긴 탄력성으로 더 멀리, 더 높이 닿는다. 유연하게 구부러질 때 응축된 힘이 순식간에 발휘된다. 위태로워 보여도 잘 겨냥한다면 어느새 도착 지점에 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온몸으로 휘청거릴 테다. 선 자리에 맞게, 자세를 계속 고쳐 잡으며, 시선은 똑바로 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