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더링, 길 찾기_ 루트 파인딩하는 법

벽, 돌, 길 2

by 혜투

내 삶도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면 좋겠다. 목적지와 지도가 선명하면 좋겠다. 그럼 덜 헤매고 덜 아득할 텐데.

인생과는 다르게 볼더링은 스타트 홀드와 탑 홀드가 존재한다. 둘 사이에 놓인 홀드 몇 개만으로 길을 찾는 과정을 ‘루트 파인딩’이라고 한다.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을 휘젓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열정적인 루트 파인딩 중이구나 여기면 된다. 쉬운 문제는 손발 놓을 곳이 명백하고 안정적이지만,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홀드 제압이 어렵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엔 양손 위치와 나갈 순서 정도만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은 발 자리와 몸의 방향도 고려해 연속적인 움직임을 상상한다. 머릿속에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벽의 각도나 손발의 높이 차이는 볼 때와 실제로 붙었을 때가 다르다. 계획을 세워도 즉석에서 수정이 필요하다.

나는 MBTI로 치면 J보다 극 P 성향이라 빽빽하게 짜인 일정이 답답하고 언제든 취소되거나 바뀌어도 괜찮다. 그래서 수정을 거듭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 오히려 즐겁다. 시도 횟수가 중요한 대회는 아니니, 최대한 많이 붙어보며 최적의 경로를 찾으려 한다. 물론 ‘문제’니까 ‘정답’이 있다. 세터의 의도가 담긴 베타 버전 영상은 SNS에 게시된다. 굳이 찾지 않더라도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걸 참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체 조건과 능력이 다르고 각자 자신 있는 무브도 따로 있어 완전히 똑같은 방법으로 가진 않는다. 답안지를 보지 않고 풀고 싶은 학생 시절처럼, 나는 혼자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지면 주위에 힌트를 구한다. 그럴 때는 정석 루트를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못 풀지만 말이다.


볼더링 문제는 많은 동작을 변형하고 조합하기 때문에 여전히 낯선 루트가 많다. 만약 익숙하지 않다면, 몸에 입력시키기 위해 춤에서 부분 동작을 익히듯 특정 구간을 연달아 붙기도 한다.

한 발로 선 채 손을 넓게 벌려 양쪽의 홀드를 잡는 ‘플립’은 두 홀드의 가운데 지점에 몸통이 와야 안정적이다. 그런데 경사진 볼륨을 뛰어서 밟는 게 망설여진다. 미끄러지거나 부딪힐까 봐 몸이 훌쩍 가지 않는다. 이때 플립에 성공해 균형이 맞춰진 자세를 여러 번 잡아보며 몸에 새겨둔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하더라도 그 자세가 자연스레 나온다. 이런 반복은 결국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기억하는 운동의 기본적인 방식일 거다. 늘 연습과 실전이 뒤섞여 구분되지 않기에 클라이밍만큼은 마음 편히 시도하는 것 같다. 전체를 완벽히 해내지 못해도, 중간 지점에서 습득하는 지혜와 기술이 있으니 허무하지도 않다. 나만의 길을 넓히는 무수한 여정이 삶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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