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돌, 길 1
볼더링: 리드, 스피드와 함께 스포츠 클라이밍을 구성하는 종목. 주로 실내의 4~5m 벽을 줄 없이 오른다.
홀드: 인공암벽에 설치된 돌.
문제: 같은 색의 홀드만 이용해 정상까지 가는 것.
클라이밍장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예쁘다’ 아닐까. 한눈에 봐도 화려하고 다채로운 공간이다. 알록달록한 빛깔과 재미있는 모양의 홀드가 어서 나를 잡아보라고 유혹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종류의 홀드들만 쓰는 볼더링 문제에서는 특히 개성 있는 형태가 많다. 초승달과 포도 같기도 하고, 물방울이나 나뭇잎을 닮았기도 하다. 게다가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린 벽에 마음껏 붙일 수 있어, 이벤트가 있는 경우 스텝들은 특별한 디자인을 구상하기 바쁘다. 새해라면 올해의 동물 모양으로, 크리스마스 무렵엔 트리 모양으로 꾸민다. 제품이나 로고가 새겨진 거대한 홀드를 브랜드 홍보용으로 만들기도 한다. 늘 무채색의 옷을 입는 사람들 덕에 플라스틱 돌은 암장의 주인공처럼 한껏 돋보인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나도 할 수 있네’ 다. 처음 보면 헷갈리는데 문제의 난이도는 홀드의 색이 아니라 그 옆에 붙은 테이프의 색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암장마다 다르지만 주로 무지개 순서이며, 7개에서 10개 사이로 나뉜다. 누구나 자신의 수준에 맞는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대부분의 운동은 장비를 다루는 방법이나 기본자세를 익히지 않고선 시작조차 못한다. 하지만 난이도가 세분화된 클라이밍은 성취감을 얻기까지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 쉬운 건 정말 쉽다. 좌우 분간만 하면 된다. 그래서 의외로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성별과 나이, 장애, 신체 조건의 영향이 적다. 볼더링장에서 백발의 노장을 종종 마주치고, 자주 오는 어린이들의 무한한 체력과 겁 없는 몸놀림에 감탄한 적도 여러 번이다. 지체장애인이 안전장치를 달고 벽을 타는 파라 클라이밍 경기도 한다. 키가 크든 작든, 근육이 많든 적든 문제는 언제나 주어진다. 하나를 성공하면 근처에 다른 문제가 준비되어 있고, 그다음 단계가 줄지어 기다리니 점점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각자의 성장과정이 선명한 색으로 표시되어 공평한 만족감과 도전 정신을 불어넣는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것이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제어하는 전신 운동인 클라이밍에서 몸이 경험하는 움직임은 다양하고 자유롭다. 동적이면서 한편으론 정적인 것도 포함한다. 중력을 이기고 균형을 잡으려면 차분한 섬세함과 과감한 민첩함이 모두 필요하다. 게다가 똑같은 동작만 무한 반복하는 운동과 달리, 이건 목표를 정확성에 두지 않는다. 차라리 효율성을 추구하는 쪽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 팔다리를 어떻게 쓰든 탑 홀드까지 잡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정석과 꼼수가 섞인 자유분방함이 허락된다. 구간마다 다른 방법을 조합하면서 복잡한 갈림길이 생긴다. 물론 문제를 만든 세터의 의도와 최적의 베타 경로가 존재하고 그대로 수행하는 쾌감도 있지만, 자기만의 길을 발견하는 재미도 크다. 게다가 한 달 지나면 암장의 모든 문제가 새롭게 채워진다. 무엇이든 금방 지겨워하는 나 같은 사람이 가장 매혹되는 지점이다.
이쯤이면 힘들고 무서울까 봐 망설이던 이도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을까. 일단 들어와 보라.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 무지갯빛으로 눈부신 클라이밍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