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고, 보고, 들은 것은 매우 미약한 내용일 뿐이지만, 신생회사가 베트남에서 어떤 고생을 하면서 영업망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지 참고가 되길 바란다. 물론 아직 갈 길은 한참 멀다.
無 : 없을 무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다.
6평 남짓 낡은 공유 오피스에 주재원들과 통역 직원 1명이 덩그러니 앉아있다. "사전 영업"을 위해 제안서를 만들어 콜드메일을 열심히 보내지만 답변은 없다. 코참(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주관 행사에 참석해서 명함도 돌려보고, 어떻게든 작은 만남이라도 만들어보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 한국계 대기업과의 미팅이 힘들게 주선되어 하이퐁까지 열심히 달려가 보았지만 역시 성과는 없다.
"사전 영업"에 필요한 홈페이지와 발송시스템 개발은 언제 완료될지 모른다. 상품 소싱은 영업을 만들어오면 그때 구매할 수 있는 판이며, 현지 직원은 통역 한 명뿐이다. 돌이켜보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 당시 상황은 헛웃음을 지을 여유조차 없었다. 초기 컨택 전략을 수정해 보고,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발버둥만 칠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암담했다.
Tip : "사전 영업" 이 필요 없거나, 가능한 구조는 3가지로 구분된다.
현지 공장을 설립하여 완제품을 생산 또는 조립하여 수출하는 제조업 회사
현지 법인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그 현지 법인의 관계사들에게 합작법인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는 회사
한국에서 베트남에 수출(상품, 기술개발, 서비스 등)을 하고 있는 방법으로 일부 거래처가 이미 확보된 상태에서 직접 베트남에 법인을 설립한 회사
위 3가지 구조가 아닌 형태로 베트남에 진출을 하였고, 현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보여줄 게 없다면) "사전 영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에서 당신의 회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매출, 거래처, 시스템 등)는 베트남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사업 기획단계에서 "사전 영업"을 액션플랜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내용으로만 작성하자. (의지만 투영된) 막연한 기대 또는 (전략적 관점에서나 그럴 듯 해 보이는) 보고용 페이퍼를 위해 "사전 영업"을 넣게 된다면 실제 현장에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契機 :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이 원인이나 기회
사람이 필요하다.
한국어를 하는 한국인이 아닌 베트남어를 하는 베트남인 말이다.
한국에서 수립했던 인력계획에 따라 영업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헤드헌터를 찾아 미팅하고, 통역 직원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면접도 봤다. 베트남의 잡코리아 같은 채용 사이트를 가입해서 채용 공고를 올리고, 접수된 여러 이력서를 하나씩 검토해 나갔다. 공고 조건에는 '급여, 복지, 처우, 근무시간, 수습기간, 할 업무, 필수 경력 등'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회사 사규가 기반이 되어야 하므로 사규 제정 작업과 병행이 될 수밖에 없다(명심하자. 누가 안 해준다. 주재원이 다 해야 한다).
Tip : 직원 채용 3가지 방법
헤드헌터 : 평균 수수료율은 총 계약 연봉의 18~21%이다. 채용 후, 수습기간(2개월) 내 퇴사/계약 해지 시, 1회에 한해 무료로 신규 채용을 진행해 준다. 2개월 직후에 퇴사하면 회사는 수수료는 수수료대로 날리고, 다시 채용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건 해당 직원과 헤드헌터사의 암묵적 협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만 할 뿐 방법이 없다. 돈이 비싼 만큼 경력이 검증된 리스트를 받아 볼 수 있으며, 면접을 해보면 확실히 다르다.
채용사이트(www.vietnamworks.com) : 한국의 잡코리아 같은 사이트이며, 비용은 한 달 기준 700~1,200만동(37~63만원) 정도 한다. 공고를 올리면 지원서를 받는데 그냥 무작위로 이력서를 보낸 사람부터 경력이 안 맞음에도 이력서를 보내는 사람까지 다양하게 올라온다. 면접을 해보면 요구조건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헤드헌터와 개인 네트워크를 통한 채용의 이점 어디와도 안 맞으니 비추천한다.
개인 네트워크 : 주로 통역 직원의 네트워크가 활용된다. 하노이대학교 한국어과를 나온 통역 직원들이 각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단톡방(수백명 단위)을 통해 서로 추천을 해주고, 정보도 공유한다. 1차적으로 검증이 되긴 하지만, 해당 경력이 통/번역이나 일부 운영 위주이므로 영업 직군에는 안 맞을 수 있다. 뽑더라도 키울 생각을 해야지 당장 현장 투입은 어렵다.
통역 직원의 추천으로 면접을 본 A는 의지가 있었으나, 영업 경력이 전무했다.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일단 뽑아서 해보자는 생각에 A를 채용했다. A는 e바우처나 e-Commerce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BM을 이해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곧바로 지인 영업을 통해 소량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인 영업은 지인의 지인(회사) 그리고 또 지인(회사)으로 확장해 나갔고, 두 달여 만에 4천명 규모의 회사에 설 용도 e바우처 판매를 제안하기 이른다.
나는 반신반의했고, 금액도 2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제 걸음마를 하는 회사로서 내세울 레퍼런스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안서를 고치고, 세부 협의를 하고, 요구사항을 서비스에 반영하는 과정이 진행되었지만 계약이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이 고객사는 기존 거래처가 있었고, e바우처는 사용해 본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쟁사 대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와 제안을 했고, 나도 함께 방문해서 노조위원장과 협의를 진행했다. 수차례 회의가 진행되고, 마침내 계약서에 사인과 입금이 되었다.
A는 지금도 밤낮으로 일하고, 판매 사이드 뿐만 아니라 공급 사이드 영업까지 직접 만들어 내고 있다. 반면, A 이후에 동종업계 경력직원 B를 뽑았지만 B는 화려한 스펙만 자랑했을 뿐 실질적인 영업능력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퇴사했다(헤드헌터를 통한 채용으로 비싼 수수료는 덤이다^^;;).
이러한 "계기"는 그 후에도 일어나고 있는데, 이 "계기"는 데스크에 앉아서 기다린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일어난다. 그리고 우연히 쌓인 계기들은 어려운 상황을 계속해서 뚫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게 전파한다. 그렇게 회사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그럼 2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