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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hoi Oct 29. 2024

현지 직원이 내 말을 너무 못 알아 들어요! ... ?

베트남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현지 직원과의 소통이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고, 나를 포함한 주재원들은 공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재원들에게 매번 듣는 말이 있다.


"현지 직원들이 내가 하는 말을 너무 못 알아들어요.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도 바뀌지를 않네요. 정말 미치겠습니다"


그렇다. 주재원은 반복되는 이 상황이 미칠 노릇이다.


하지만 정작 미치겠는 것은 주재원이 아니라 현지 직원이다. 


잠시 베트남 직원으로 입장을 바꿔보자.


'한국인 상사가 "말로만" 지시를 하고, 회의에서 설명한다. 가끔은 화이트보드에 간략한 설명을 적기는 하는데 전체 내용에 대한 맥락도 없고, 한 부분만 몇 줄 설명이 끝이다. 그리고 다음 회의에서 왜 바뀐 것이 없냐고 버럭 화를 낸다. 왜 이해를 못 하냐고 한다. 나는 한국회사도 처음이고, 이 업종도 처음 일을 해 본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문서도 부족하고, 정확한 가이던스도 없다. 가이던스를 달라고 하니, 그건 네가 만들어야 한다고 화를 낸다. 정말 미치겠다. 자꾸 한국에서는 말이야~ 하면서 한국에서 했던 이야기를 한다. 어쩌라고? 여기는 베트남이다. 여기서 백날 한국 이야기를 해봤자 인프라도, 서비스도, 고객도 모두 다른데 왜 자꾸 한국에서 하던 방식을 정답이라고 여기서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딴에는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발음도 이상해서 잘 들리지도 않고, 어순도 엉망이라 각 맥락이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만둘까?'


보시다시피 주재원과 현지 직원 모두가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국에서는 일을 잘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에서 일하는 방식, 특히 실무자가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어떻게 일하는가?


C레벨의 경영 방향을 이해하고, 중간 관리자가 뭘 원하는지 실무자 "스스로" 찾는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유기적으로 타 부서와 협업이 필요한 점을 찾고, 각 영역(사업/서비스/CS/개발/회계/법무 등)에 미칠 영향도를 분석하고 나의 업무에 적용한다. 목표 일정과 각 해야 할 일을 스케줄링한 다음에 '이것을 해야 합니다'라는 아젠다를 던지고 나서 일을 끝까지 추진해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중간관리자와 C레벨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일이 잘 돌아가게 한다.


베트남에서도 이런 직원을 찾는가?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기를 원하는가? 간단히 꿈 깨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정규직이라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큰 한국에서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이야기하면서 직원과 회사의 동반 성장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에 있을지 모를 추상적인 보상(승진/평가/핵심부서 배치/대학원 비용지원 등)을 이야기하면서 직원 스스로 일을 찾도록 한 다음, 개인의 동력을 회사의 동력으로 치환하라는 말을 할 수 있다(사실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은 이제 거의 끝물이라고 본다). 


베트남은 고용과 해고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2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면 1년 계약을 할지 평가 후 결정한다. 그 1년이 만료되면, 다시 1년을 계약할 수 있다. 총 2년 2개월이 지나면 그제야 장기 근로계약이 체결되는데 그렇다고 한국처럼 강한 정규직 형태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에 대한 보상은 즉각적이어야 한다. 너는 핵심인력이야. 잘하고 있고, 회사가 너를 키워주고 있다는 말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일에 대한 업무 범위는 명확해야 하며, 계약서에 있는 업무 외에 일을 시키기는 어렵다. 왜냐면 그 일은 계약 범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이 일도 해봐라 하면서 일을 주는데 문서도, 프로세스도, 가이던스도 없다. 근데 그걸 나보고 생각해서 만들라고 하니 뭐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 싶은 거다.


베트남에서 주재원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전체 업무에 대한 초안을 주재원이 대부분 만들어야 한다. 그 초안은 말이 아닌 문서 형태여야 하며, 영어로 작성하되 디테일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회의를 해서 충분히 소통을 한다. 필요시, 통역 직원을 배석하여 영어로 부족한 점을 해소한다(다시 말하지만, 영어는 한국인과 베트남인 모두에게 외국어다).

기본 포맷이 정해지면, 각 세부 업무는 현지 직원에게 일임하여 일을 진행시킨다. 이때도 말로만 해서는 안되고 이메일로 정확한 내용을 적고, 다시 구두로 소통해야 한다.


이메일에 들어갈 업무 지시 사항은 최소한 아래 내용이 모두 들어가야 한다.      


주제 : 무엇을 하길 원하는가

내용 : 최대한 구체적으로 세분하여 해야 할 일에 대한 내용을 적는다(표를 만들어서 각 영역별 과업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기대효과 : 왜 이 일을 해야 하며, 이를 통해 무엇을 얻기 원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목표일정 : 월/일/시간을 특정해야 한다(이때까지 결과를 달라는 말이다).

지원사항 : 내가 정한 일정 내에 할 수 있는지, 시간과 추가 지원 사항은 없는지 묻고 답을 받아야 한다.

자료 : 필요한 자료/보유 자료를 첨부해서 제공한다.


중간 진행사항 체크는 필수이며, 수시로 대화하고 별도 회의를 통해 관련 현지 직원들을 소집해서 진행 경과를 공유해야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업무에 익숙해 지고, 어떤 시점을 지나면 일의 속도가 확 붙는다. 이때는 이 정도로 빠르게 일을 잘하다니라는 생각에 놀라기도 한다. 


제발 한국말로 지시하거나, 통역을 통해 지시하면서 현지 직원이 모두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다 알아 들었을 거야라고 스스로 면피하지 말라. 


못 알아 들었다! 아니 알아들을 수 없다. 현지 직원이 고개를 끄덕인 것은 화내는 당신이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지 이해해서가 아니다. 


당신에게 베트남 상사가 베트남어로 지시하거나, 통역을 통해서 지시하는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가? 통역이 사업이나 경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봤자 통역이다.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주재원 스스로 일하는 방식을 바로 세우고, 현실을 직시하고, 바꿔나가지 않으면, 주재원과 현지 직원은 서로를 비난하면서 허송세월하게 된다. 베트남에 진출하는 회사도 많지만, 철수하는 회사도 많다. 시간을 다 보내고 나서 나는 그래도 할 만큼 했다고 자위하며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면 얼마나 비참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주재원은 완벽하지 않다. 이를 인정하고, 현지 직원과 제대로 된 방식으로 소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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