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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la May 14. 2024

음악을 왜 했더라

 평범한 저녁이었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수학 과외 지원이 끊겨 성적에 타격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내 과외를 끊어버린 장본인께서 식사 중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뜬금없는 한마디를 던졌다.


 “ 하고 싶은 일 해, 하고 싶은 일. ”


 그 말에 문득 몇 해 전의 마음을 떠올렸다. 작사를 해볼까 하던, 그러나 곡을 쓰지 않고는 밥벌이가 시원찮다는 이야기에 별다른 속상함 없이 접어두었던 마음. 그건 사실 로망에 더 가까운 것이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알 리가 만무했다.


 “ 가사 써보고 싶었는데 돈이 안된대. 작곡을 배울 순 없잖아요. “


 그날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우리 아빠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투자를 요하는 일에는 마음이 아주 박한 사람.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시란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날 아빠는 내게 그럼 배워,라며 아주 건조한 대답을 남겼다.


 이건 오기에 가까웠다. 중학교 재학시절 노래를 하겠다던 나를 못마땅해 하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한 번도 달가워한 적 없던 음악을 허락했으니 놓치지 않겠다는 일종의 반항심 같은 것이었다.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에 나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첫 레슨을 다녀왔다. 상담만 받아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못한 척, 한 시간을 꽉 채워 수업을 받아왔다. 교과 공부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배운 일은 처음이었고, 그건 아주 달콤한 일탈이었다. 2018년 3월. 생명공학과 진학을 희망하던 열아홉 이과생은 그렇게 맥락도 없이 예체능 입시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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