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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la May 21. 2024

2. 돌이켜보면, 널 참 사랑했지.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갈 하고 싶다고 느꼈던 건 열두 살 때의 일이었다. 내 목소리를 대단히 여겨주는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아주 자주 노래를 했다.


 큰 집에 살 때에도, 작은 집에 살 때에도 노래를 불렀다. 집이 낡고, 낮고, 방음이 되지 않아 건물 밖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노래를 했다. 탐탁지 않아 하는 부모님의 심기를 알면서도 매일같이 내가 어떤 노래를 할 것인지를 포스트잇에 열두 번씩 적어 창문에 붙여두며 지치지 않고 꿈을 꿨다. 모종의 이유로 공부를 하겠다 마음먹은 뒤에도 노래를 못하게 되는 건 싫어서, 가족들이 집에 없는 날이면 빈 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를 했다.


 그 아이가 커서 기어이 음악을 했다. 노래는 시켜주지 않을 부모님을 알기에 곁에 있으면 족하다는 마음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피아노가 치기 싫을 땐 노래를 부르며 남 모를 시간을 버텼다. 대학 입시는 탁월한 피아노 실력을 요했고, 고작 몇 년 피아노학원에 다녀본 게 다였던 나의 능력치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오기로 버텼다.


 그럼에도 뮤즈가 되어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노래로 견뎠다. 그들처럼 되지 못함에 좌절했으나 그들처럼 되고 싶어 그만두지 못하고 서성였다. 그럴수록 나의 삶은 내가 그리던 일상과 멀어졌다. 재수까지 도합 2년의 입시 기간을 거쳐 어찌어찌 실용음악과에 입학했으나 커리어로 충분한 수준의 대학은 아니었고 편입이 아닌 다른 대안은 내게 없었다.


 난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서울예대에 입학할 수 있는 재목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는 편입준비를 시작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하루에 12시간씩 피아노만 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음을 끊임없이 복기하고 그걸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한심하다 여기며 지지부진한 입시기간을 지속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으면서, 그렇게까지 해서 그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으면서. 그런 마음으론 당연히 잘 해낼 수 없었다. 난 그렇게까지 피아노를 칠 수 없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피아노를 치고 싶던 적이 없으니.


 음악을 시작한 지 5년이 되던 해에 입시를 포기했다. 더 이상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을 것을 알았다.


 차마 놓아지지 않던, 내 오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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