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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la May 28. 2024

3. Cliché : 여기까지




 끝은 뻔했다. 현실 앞에 음악을 놓았다. 현실을 이길 만큼 이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 일로 끝장을 보기엔 이미 너무 많은 곳에 시선이 분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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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해야지, 말해야지 마음을 먹었다가도 레슨만 가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입시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뱉는 게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결국. 이게 나의 결국이구나.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이 문장을 곱씹었다. 나는 기어코 패배했기에.


 그 결국을 맞이한 날 느낀 건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적막이었다. 이 선택을 책임질 수 있을지, 옳은 판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부진하게 끌어온 입시에 지쳤다. 그뿐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본체는 무능하지 않다고, 단지 이 카테고리 안에서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싶은 일말의 마음을 곁들여.


 모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으나 한 순간의 섣부른 판단으로 누구보다 모난 삶을 자처했다며 후회했고 어느새 이 회한은 그간의 주체가 되어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퇴색되지 않기 위해 벗어났다. 나는 도망쳤다. 돌이켜보면 그 이상의 무엇도 되지 못할 선택이었다. 비겁하게,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맥북 안에 몇 년을 잠든 나의 노래들은 오래도록 세상에 닿을 수 없을 것이다. 무능을 처절히 깨달으며 스스로의 불성실을 비판했던 숱한 시간은 이렇게 저물 것이다. 오래도록 아릴 게 뻔했다. 흘러간 시간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

.

.


우리의 색이 조금 바랬네
뜨겁던 날들이
조용히 저물어 가
서로를 어쩌지 못한 채로
.
.
초라한 끝인사와
두 눈에 고인
힘없는 이별 앞에
돌아서면
우리라는 말도
지나온 모든 밤도

거기까지


<자작곡 'Cliché'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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