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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사이코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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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일 Oct 16. 2023

사이코(11)

호의 이야기

후에 윤수한이 물었다. 소라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새 헤어진 일이 소문이 났구나, 생각했다. 소라가 울고 있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려고 향한 골목 어귀에서 홀로 숨죽여 우는, 여기서 왜 울고 있냐는 그의 물음에 소라는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간수하지 못한 내 잘못이 커서, 그래서 너무 슬퍼서 울고 있었다고. 

소라는 나를 보고 있었던 거였다.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내가 원하지 않았다는 억지로, 이 정도쯤은 실수로 넘어갈 수 있다는 오만으로 동기와 입맞춤하는 나를. 나는 소라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전역하고, 복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그 아이를 피했다.

윤수한과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죄가 줄어든 것만 같았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내가 카페를 개업하고부터였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다는 소라와 우연히 만났다.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카페를 나서는 그 아이를 붙잡은 건 나였다. 

알고 있었다. 내가 숨기려고 했던 일들을 소라는 다 알고 있었다. 그날, 소라가 무단으로 아르바이트에 나오지 않았던 날. 걱정됐다. 희미하게 보였지만 분명히 결박흔이었다. 소라의 손목과 발목에 새겨진 기다란 줄이 오늘은 목덜미로 향하지 않을까 했다. 소라가 냈던 이력서를 찾아 집 주소를 확인했다. 망설였다. 끼어들어도 되는 일인지, 나에게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좁은 골목, 골목을 지나서 윤수한의 낡은 빌라 앞에 도착했을 때, 보였다. 맨발로 뛰쳐나온 소라가. 발이 엉켜 넘어진 그 아이 뒤로 윤수한이 나왔다. 윤수한의 손에 들린 허리띠가 대롱대롱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갈색 가죽끈이 언제라도 소라의 등을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렸다. 다가가려는데 소라의 눈동자가 보였다. 

살의로 번뜩이는 눈동자가, 경멸을 쏟아내는 눈동자가, 나를 원망하는 그 아이의 눈빛이. 비명을 질렀다. 엄마, 엄마, 엄마. 포효하는 그 아이의 발악에 어딘가에서 창문이 열렸다. 당황한 윤수한은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에 홀로 남았는데도 소라는 연거푸 소리를 질렀다. 

무서웠다. 다가가지도 못하고 외면하지도 못한 채 구경꾼들 사이에 묻혀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서야 그 아이의 비명이 파묻혔다. 경찰은 찢어진 소라의 윗옷 위로 재킷을 덮어줬다. 경찰과 몇 마디 나눈 그 아이가 경찰차에 탔다. 건물에서 나온 윤수한이 그 아이의 옆 좌석에 올랐다. 

골목을 오른 차가 길을 막지 말라며 경적을 눌렀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경찰차를 따라서 골목을 내려갔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소라였다. 잠긴 소라의 목소리가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다. 사장님, 저 내일부터 근무 못 나갈 거 같아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내가 침묵을 택하자, 뒤이어 그 아이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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