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의 일기
2.
나는 어느 여름날에 와있어.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 조회를 서던 여름날의 아침. 나는 까치발을 들어. 혹시 네가 보이지 않을까, 발가락에 온 힘을 모아. 너의 정수리가 보일락말락 해. 두 발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대열에서 벗어나. 흐트러진 줄을 참지 못한 선생이 노려봐. 정열을 맞추며 제자리로 돌아와.
그때 네가 돌아봐. 네가 웃어. 여름날의 볕처럼 강렬하게.
왜 좋았냐면 글쎄, 그냥 좋았어.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달처럼 느껴졌거든. 어두운 밤을 비추는 달, 고개를 들면 언제든 보이는 달, 내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달. 처음에는 지켜볼 뿐이었어. 영 프로인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두려웠거든. 그래서 수초 뒤로 숨었지.
영 프로 기억하지?
학교 다닐 때 존재감이 없어서 지어진 내 별명 말이야. 늘 지켜보고 있던 건 나인데. 어느 날부터 옆에 걔가 있더라. 화가 났어. 내가 먼저였잖아.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훨씬 더 컸지만, 나는 지키고 싶었다고. 달은 홀로 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인데, 먼발치에서 봐야 할 뿐 가질 수 없는 존재인데, 그런데 주인 행세를 하는 거야.
먼저 발자국을 찍고 깃발을 꽂는 자의 것이라는 듯이.
나도 늘 함께였어.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매점에서도, 버스에서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졸업식 때도, 입학식 때도, 거리에서도, 영화관에서도, 카페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골목에서도, 너의 집 앞에서도. 너의 웃음과 숨결과 손짓과 몸짓과 애정을 공유하고 있었지.
네가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아. 나의 사랑은 네가 완성하는 게 아니야. 말했잖아.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사진을 찍은 이유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걸. 그래. 오늘도 나는 너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아. 너는 네가 선물한 필름 카메라를 멍하니 보고만 있어. 풀어진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기분이 별로였는데 찰칵이는 소리에 조금 나아졌지. 벌어진 네 입술이 내 이름을 불러.
창밖에는 눈이 쏟아지고 있어. 아쉬워. 네가 이렇게 자빠져 있지만 않았더라면 함께 첫눈을 맞았을 텐데. 싸구려 같은 년. 네가 웃을 때마다 위장이 뒤틀려. 흘리는 웃음 좀 버리라고 했잖아. 과시하는 차림도. 친절한 목소리도. 상냥한 얼굴도. 너를 너무 믿었던 내가 멍청했어. 네가 무얼 먹고, 누구와 연락하고, 누구와 만나는지 말해달라는 거뿐이었는데. 간절히 부탁했잖아. 뭐든 말해달라고. 알아야 널 보호할 수 있다고.
그런데 왜 자꾸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