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의 일기
나쁜 건 너인데. 채워 주기로 했잖아. 외로운 너를, 사랑이 필요한 나를.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어. 너의 과거도 덮어두고, 더러운 너를 정화하기 위해 억지로 참고 애썼다고. 그런데 내가 덮어둔 과거에 너는 화를 냈지.
버스를 기다리는 사진이, 함께 달리는 사진이, 접시를 나르는 사진이,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사진이, 초라한 엄마와 함께한 사진이, 호와 말다툼을 하는 사진이, 억지로 웃는 사진이, 억지로 우는 사진이. 계단 끝에 서 있는 사진이, 너의 지나온 시간을 기록해. 오늘처럼.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어. 너를 알아 가기 위한 길이었으니까. 나를 알아 가기 위한 일이었으니까. 자고 일어나면 알게 되겠지. 그러리라고 믿어. 네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아침을 차릴게. 있잖아. 너와 함께 있을 때면 온종일 오줌을 참아. 오줌을 누러 간 사이에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내내 너를 지켜보고 있어.
오늘도 너를 재운 후에야 화장실에 갔어. 개구리 한 마리가 변기통에 빠져있더라. 하수구를 역행해서 솟아났는지, 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는지 잘은 모르겠어. 어떻게 흘러왔든 개구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게 중요했지. 배를 뒤집어 까고 버둥거리는 개구리가 양수에 담긴 태아처럼 보였어. 그래서 물을 내려버렸어.
순식간에 휩쓸려간 개구리가 소용돌이치는 물에 한 바퀴, 두 바퀴 돌다가 구멍 속으로 사라져버렸지. 너도 개구리처럼 엄마 배 속에서 진작 죽었어야 했는데. 그럼 네가 아플 일도, 내가 짐승으로 변해 갈 이유도 없었을 텐데. 평범하게 살고 싶다며.
내가 규칙을 만들었던 건 너의 바람 때문이었어.
평범하게 사는 법은 간단해.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면 되잖아. 하지 말라는 걸 하지 않고, 먼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 것. 그것만 지키면 행복할 수 있는데 왜 자꾸만 엇나가는 거야. 네 몸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규칙이었잖아. 무수히도 지켜 왔던 규칙. 흘러내린 물감이 네 발치에 고여 웅덩이를 만들어. 웅덩이가 늪이 되어 너를 집어삼키려고 해. 발목까지 쑥, 빠졌는데도 너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어.
비로소 네가 나에게 용서를 구했을 때. 너와 나 사이에 믿음이 얼마만큼 깊은지 깨달았잖아.
깨닫지 못했다면 나의 품에 파고들지 않았을 테니까. 다시 먹어 봐. 내가 네 입맛에 맞게 노력해 볼게, 라는 눈빛으로 내가 만져주길 기다렸지. 너는 미안하다는 말보다 크게, 용서해 달라는 말보다 크게, 나를 버리지 말라고 해. 무릎을 꿇고 빌던 너의 얼굴이 엄마와 겹쳐 보여. 티 없이 맑게 웃고 있다가도 문득 우울해지는 너의 얼굴이 좋았었는데.
어째서 그 여자처럼 변해 가는 거야? 허물을 벗은 네 얼굴이, 역겨울 정도로 그 여자와 닮아 가고 있어.
사랑에 간섭과 집착은 당연한 거야. 내가 늘 말했잖아. 간섭과 집착이 줄어들수록 불안이 커질 거라고. 너는 나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려고 안간힘을 써. 문득 의문이 들어. 나의 마음을 기만한 시점이 어디서부터였을까. 내가 너를 선택했고, 네가 나를 따라왔잖아. 그런데 왜. 나를 사랑해서 만나놓고 왜. 너의 불행을 알아봐 준 유일한 사람에게 왜.
도대체 왜.
괴로워. 나의 걱정이 간섭으로, 관심이 집착으로, 권유가 강요로 왜곡돼. 오늘은 내가 조금 흥분했다. 두서없는 기억은 싫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여기서 마무리 지으려고 해. 이해해줘. 종일 아픈 사람을 간호하다 보면 돌아버릴 때가 있어. 너는 지금 내 옆에 잠들어 있어. 치료가 고단했는지 숨소리가 고요하네. 다행이다. 아직 살아 있어서.
그런데 소라야, 내가 언제까지 널 용서해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