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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사이코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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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일 Oct 16. 2023

사이코(7)

호의 이야기

머뭇거리던 간호사가 소라를 영안실로 옮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짧게 인사할 시간을 주었다. 가려진 천막 안에는 오직 소라와 나, 둘뿐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로 용서를 구해야 할까. 문득 소라의 손과 발이 보였다. 

그 아이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밴드를 붙였다. 온기가 식어버린 맨발에 양말을 신기려고 고개를 숙였다. 온전한 손으로 노를 젓길 바랐고, 걷는 길이 모래밭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발등 위에 발목도, 발목 위에 종아리도, 종아리 위에 허벅지에도 멍이 가득했다. 

이상했다. 링거 바늘을 꽂을 핏줄을 찾다가, 찾다가 허벅지까지 올라갔나 싶었다. 배꼽 주변에도, 팔뚝에도 무자비하게 꽂힌 바늘이 상상되었다. 그 아이를 영안실로 보내며 내딛는 한 걸음, 한걸음이 질퍽하게 느껴졌다. 곧장 윤수한의 집으로 향했다. 윤수한은 걸쇠로 잠긴 문 앞에서 소라의 죽음을 맞이했다. 

물었다. 소라의 몸에 든 멍은 누구 탓이냐고. 탓이 아니라고 했다. 사랑이라고 했다. 가증스러운 얼굴을 참지 못하고 문틈 사이로 손을 뻗었다. 윤수한의 멱살이 잡혔다가 놓쳤다. 뒤로 물러선 윤수한은 몸에 오물이 묻은 사람처럼 진저리를 쳤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뿐이라고는 왜 그랬어, 가 다였다. 당장이라도 칼을 꺼내 들어 윤수한의 이마 한가운데로 쑤셔 박고 싶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사랑해서. 사랑해서 그랬어.’ 홀린 듯 중얼거리던 그의 목소리에 피가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종일 잠만 잤다. 울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그리워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그렇게 나를 외면하며. 윤수한의 편지가 도착할 때까지. 편지가 왔다는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보낸 이는 소라라고 했다. 손님이 없는,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편지를 뜯었다.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사진이 프린트된 편지지였다. 한번을 읽고, 두 번을 읽고, 세 번을 읽었다. 그간 소라에게 벌어진 일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내가 윤수한을 죽이지 못하리라는 걸. 마음이 변할 리 없다고 장담했던 그해 겨울처럼, 내가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라는 걸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길고양이를 데려다가 집에서 키우잖아? 그럼 뇌가 작아진대. 

전에 소라가 한 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잔뜩 쪼그라든 그 아이의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였을까. 그래서 소라는 알면서도 윤수한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도마 위에서 펄떡이는 고등어가 떠올랐다. 몸이 활처럼 꺾인 고등어의 뱃살이 퍽하고 터졌다. 그 안에서 쏟아진 건 내장이 아니었다. 도마 위에 쓰러진 소라의 몸이 꿈틀거렸다. 

울컥 욕지기가 일었다. 변기통을 부여잡고 한참을 쏟아냈다.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토사물처럼 어딘가로 비워지고 싶었다.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고,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다가 보면 죄가 씻기지 않을까. 그 아이의 시선이 어깨를 짓눌렀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술기운에 몸이 비틀거렸다.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날, 소라가 죽던 날. 윤수한을 죽이지 못한 것을. 소라의 텅 비었던 눈동자가, 뭉그러진 시선이, 그 끝에 서 있던 윤수한이 보였다. 윤수한이 몽둥이를 들고 섰다. 붉은 방울이 몽둥이를 타고 흘러 바닥을 적셨다. 소라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쳐다봤다. 호,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원망이 그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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