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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Feb 19. 2023

불면(不眠)

이런저런 생각에 잠에 들 수가 없다

요즘 잠을 잘 못 잔다. 가뜩이나 여행 준비와 공부를 병행하느라 매일 연등을 해서 하루에 6시간 정도 자는데, 막상 침대에 누워도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머릿속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아 1시간 넘게 뒤척여도 잠에 들지 못한다. 어제도 연등을 마치고 난 후 불침번 근무까지 2시간 남아 짧게나마 잠을 청했는데, 1시간 가까이 잠들지 못하자 결국 포기하고 밖에 나와 4시까지 깨어있었다. 한 번 4시간 자는 거로 원래 그렇게 피곤하지 않은데, 최근 불면증 때문에 피로가 누적돼 오후 내내 잤다. 그러나 여전히 졸리다.


하루 종일 졸린 상태로 지낸 지도 꽤 오래됐는데,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거와 관계없이 밤에 도저히 잠에 들지 못하는 거다. 이런 불면증을 해결하려면 최대한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요즘 운동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요원해 보인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피곤해서 자꾸 하품을 하게 되는데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생각과 그로 인한 불안과 긴장에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이 막막한 상황.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잠들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느끼는 무기력함. 이래저래 잠에 들기 전이 하루 중에 가장 우울한 때다.


잠에 들기 전 여행 생각을 주로 한다. 애당초 연등 시간 때 2시간 동안 그것만 붙잡고 있기도 하고, 요즘 내 최대 관심사인지라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보통 일본 여행이 어떻게 될지 찾아본 정보를 바탕으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는 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가지의 생각들이 파생되어 나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생각의 흐름 속에 근심에 빠져 도저히 잠에 들지 못한다.


보통 여행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비용 생각도 한다. 비행기 값(왕복이 아니라 편도 두 번이라 비용이 더 나간다), 숙소, 온갖 교통비(지하철, 도쿄-오사카 신칸센 등)만 해도 고정 비용만 100 가까이 나오고, 여행 동안 먹을 음식, 입장료와 쇼핑하는 데 쓸 비용까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비용에 이유 모를 불편함이 느껴진다. 군대에서 모아놓은 돈도 충분히 있고, 거기다가 부모님이 원하면 보태준다고까지 해서 실제로는 부족하지 않은데, 마음속 한편에는 여전히 내가 가난하다는, 돈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자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사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의 욕망을 생각하면 실제로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욕망이 크면 클수록 마음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건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커진다. 불확실해서가 아니라, 확실하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예전에 20만 원 초반대였던 비행기 값은 순식간에 엄청나게 뛰었다. 코로나 이후로 여행 수요가 급증하기도 했지만, 물가가 전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갈수록 욕망은 커져만 가는데, 멈출 기미를 모른 채 치솟는 물가는 현실과 어떻게든 타협하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대책 없는 세상이다. 뉴스에서도 과학자, 환경운동가들의 주장대로면 2050년에 평균 기온이 2도 만큼 상승하면 지구 생태계와 기후가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등의 종말론적 이야기들이 넘쳐나는데, 그걸 알면서도 여행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려고 비행기를 3번이나 탄다(그 후엔 미국도 간다). 요즘 아무리 환경이나 지속가능성 같은 것들로 세상이 떠들썩하더라도, 떠나고 싶은 여행은 다 떠나야 하고, 새로 나온 아이폰도 사야 하고, 매년 새로 나오는 신상 옷과 신발도 유행에 맞게 갖춰놔야만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사실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마땅히 우리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당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미래지향적이고 세련된 사람이라는 우월감에 의해서 그런 걸 따르는 게 아닐까. 미래에 대한 확실한 신념 없이 그저 근시안적인 선택만 반복할 뿐이다.


요즘 자본주의 자체에 회의감이 드는데, 동시에 욕망을 실현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하는 위선을 보인다. 진짜 세상이, 내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 욕망은 너무나도 쉽게 위선을 덮어버리는데,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욕망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위선 역시 극대화한다. 당위가 욕망을 부추기는 양의 논리에,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들을 변수에서 철저하게 제외하는 시장논리에 의해 얼마나 많이 부정되는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 역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눈을 가린 나머지 자기모순에 사로잡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런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두려움이 자의식 안에 존재하는 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들기 전이면 그동안 미뤄놨던 중요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인생의 문제로 인한 고민이 심화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해결을 (‘언젠가’라고 부르는) 먼 훗날로 미룬 채 다시 꿈속의 이상으로 도피하는 거다. 하고 싶은 걸 다하면서 살고, 동시에 그로 인한 문제(지구 온난화, 생태계 파괴, 에너지원 고갈, 빈부격차, 인플레이션, AI(기계)에게 대체돼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는 인간,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학자금과 미국 생활 적응, 그리고 앞날이 캄캄한 여자관계 등)는 전부 해결된 그곳.


그러나 죄책감은 끝까지 나를 붙잡는다. 내가 바꿀 수 없다고 무작정 회피하려 하지 말고 좀 더 반성하라고, 좀 더 근심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라고. 그 손길을 뿌리치지 못해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다. 하루 동안 해결했어야만 했던 수많은 문제들을 어제의 '나'가 될 오늘의 나에게 남겨두고 내일의 나로 갈아타는 뻔뻔한 행위를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해왔는지를, 그렇게 쌓이고 쌓인 문제들이 언젠가 어떻게 나에게 돌아올지 잘 알고 있기에. 하루하루 쌓여가는 부채와 미루기만 하는 당위에 대한 죗값을, 매일 밤 침대 위에서 불면으로 치르고 있는 거다.


또 잠이 오지 않는다. 고민은 깊어지고 정신은 지쳐가면서 병들어간다. 눈을 뜨면 또다시 마주해야 하는 세상의 문제와 갈등은 잠에 든다고 회피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가끔은 삶 그 자체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 중 보이는 밝은 모습도 지나고 나면 어둠을 숨기기 위한 익살에 불과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림자는 더 커져만 간다. 그렇게 58번 설치면 전역이지만, 그것이 갈등의 끝과 함께 찾아오는 자유의 시작이 아닌, 더 심화된 문제의 새로운 시작일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그다지 기대되지도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성에 두려움은 더 커져만 간다. 도망치고 싶다.


자려고 누우니 진작 잠든 후임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사람이라면 생활관을 울리는 저 소음에 짜증을 느끼겠지만, 도저히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불안과 근심이 더 크다는 걸 알기에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만약 코골이에 잠을 자지 못해 화가 난다면, 그 이유로 타인에게 따진다면, 그 이상으로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이 마음속 떨림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또 1시간이 지났다. 전역이 빨리 다가오기만을 바라지만, 누워있는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추기만을 바라는 아이러니에 갇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은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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