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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Feb 21. 2023

3+3=3

어쩌다 시킨 책이 2 박스 배달 온 행운을 대하는 자세

운이 좋으면서 좋지 않다. 똑같은 돈으로 더 많은 책을 받았으니 좋은 거고, 집으로 가져가야 해 귀찮은 게 늘어났다면 안 좋은 거다. 우연히 지난주에 주문한 책들이 똑같은 걸로 2박스 배송 왔다. 주문한 책을 받아보고 정리하려고 하던 찰나, 동기가 자기 택배를 가져오며 내가 박스 하나를 안 챙겼다고 알려주면서 비슷한 크기의 (하지만 종류는 다른) 박스를 하나 더 가져다줬다. 분명 내가 시킨 건 아니어서 열어보니 방금 갖고 온 상자와 똑같은 책들이 들어있었다.


처음 봤을 때 혹시 내가 실수로 똑같은 걸 2번 시켰나 해서 주문 확인서에 적힌 주문 번호를 확인했다. 한 글자도 다르지 않고, 완전히 똑같았다. 혹시나 해 카드 결제 내역을 찾아보니 내 실수로 두 번 주문한 것도 아니었다. 이건 분명 보내는 과정에서 직원이 실수를 했거나, 서로 다른 곳에서 상품을 보내는 실수를 했으리라. 주문 확인서의 폰트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은, (다른 기계를 사용했을 테니) 후자의 예측이 정답에 좀 더 가깝겠다는 확신이 들게 했다. 어쨌든 4만 원 내고 8만 원어치 상품을 받는, 수익률 100%의 창조 경제를 실현했다.


물질적인 면에선 분명히 이득이다. 여행 책에 관심을 보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팔 수도 있고, 아니면 휴가 나가서 알라딘에서 중고가 잘 쳐서 팔 수도 있다. 비록 4만 원밖에 안 되는 금액이지만 모처럼 찾아온 행운이었다. 내가 얻지 못한 걸 얻어내기 위해 투쟁했던 지난 시간과 달리 하늘이 내 편을 들어줬다. 그러나 뭐라고 해야 할까 나에게 찾아온 이 행운에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지금 상황. 매번 이렇게 찝찝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이전 식혜 이야기도 그렇고 예기치 않게 찾아온 긍정적인 상황에서조차 이지선다를 강요받는 느낌이다. 기분 좋은 상황조차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게 참, 집 갈 때가 점점 다가오니까 잘 될 거라고 생각한 일들도 자꾸만 꼬이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책을 반송하기로 결정했다. 모처럼 나에게 찾아온 작은 행운을 과감하게 떠나보내려고 한다. 나중에 올지도 모르는 더 큰 행운을 위한 마중물이라고, 나름 양심적으로 살아간다고 언젠가 그에 걸맞은 보상이 돌아올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득 친구가 해줬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당위에 대한 기대만큼 무용한 것도 없다.”

세상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고, 그걸 좀처럼 알아주지 않는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톱니바퀴처럼 각각 어떻게든 맞물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라는 작은 톱니 하나 제대로 굴러간다고 그리 큰 변화가 생기지 않으니까. 그러니 소신대로 정직하게 산다고 보답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버리려고 한다. 보상 심리과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근 몇 달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나를 위해서라도 떨쳐내고자 한다.


카뮈의 부조리 철학을 공부하다 새롭게 알게 됐지만, 한동안 너무나도 쉽게 망각하고 있던 게 있다. 무심한 세상은 내 의지와 기대와는 무관하게 돌아간다. 그러기에 내가 원하는 의미를 만들려고 행동하고, 그래서 기대하더라도, 부질없는 욕망은 나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세상에 의해 번번이 좌절될 뿐이고, 거기서 부조리의 감정이 싹튼다. 거기에 빠져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이 무의미해 보이고, 그로 인해 분노의 감정이 생겨나 자신을 망쳐갔다. 부조리에서 빠져나오고 싶지만, 그렇다고 주변의 요소들에 타협하고 싶지는 않고, 단지 내 시야를 왜곡하는 부정적 렌즈를 올바르게 끼려고 한다. 그동안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면, 군대가 인생의 마지막 장소인 것처럼 의미 부여하고 반쯤 몰입해왔기 때문이리라.


카뮈에 관심을 끊은지 시간이 꽤 흘러서인가, 군 생활에 있어 나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부조리 철학으로부터 한동안 멀어지니 그동안 지나친 욕심과 목적의식에 지배돼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결국 나에게 중요한 건 목적이 아닌, 수단을 얻는데 목매는 게 아닌, 앞으로 남은, 혹은 찾아올 순간을 최대한 경험하고, 느끼고, 또 즐기는 거다. 오늘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한 작은 행운처럼, 때로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그저 흘러가듯이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도 있는 거다. 또 며칠 안 돼 부조리와 타협해버리는 것 같아 영 마음이 편치 않은데, 나중에 돌아보면 비로소 이해하게 될 나름의 이유를 그때는 찾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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