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술로 에너지 효율성 극대화하기
난 옛날부터 컴퓨터 과학이 너무 싫었다(지금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건 변함없다). 어차피 프로그래밍 따위 안 해도 다른 능력치에다가 몰빵하면 상관없겠지 하며 살아오고 있었는데, 에너지 전환에 있어 내 최대 관심주제인 스마트 그리드를 공부하는 데 있어 전기공학뿐만 아니라 시스템 통제와 같은 프로그래밍 관련 역량 역시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과거 오만한 생각은 버리고 어떻게든 프로그래밍에 친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실 군대 와서는 딱히 진로 관련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공부해 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런 것들은 대개 사회로 돌아가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해서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진로나 관심분야보다는 문학이나 철학 등 그동안 등한시해온 일반교양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실제로 내가 그동안 멀리해온 학문을 접하면서, 무지로부터 비롯되었던, 한심할 정도로 굳건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지적 성장을 이루기도 했고, 어느 정도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세상을 좀 더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런 것들이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꽤 지나 돌아보면 1년 넘는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과정이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느끼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즐겁고 의미 있던 시간을 뒤로하고, 사회로 나가기까지 2주 남긴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장 스마트 그리드 기술과 관련해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고, 상용화되어 실제로 적용됐는지도 모른다. 당장 내가 그쪽에 관심을 가진 시점으로부터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으니 그때 알고 있던 것과는 현실이 많이 달라져있을 것이기에, 공부를 시작한다면 현 상황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최근 Chat-GPT 열풍을 기점으로 AI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번 커지면서, 어떻게 하면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을 내 분야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제대로 활용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생각해 봤다.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쪽은 단순 발전보다는 그리드 통제와 관리 쪽이다.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달성함과 동시에 전체 그리드의 효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최근 내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호기심은 복잡한 파워 그리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와 이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매개변수를 최근 떠오르는 기술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재생 에너지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인 간헐성(intermittency)과 불안정성(instability)를 극복해 활용성을 높이고, 동시에 버려지는 전력량을 감소시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통상 전력 예비율(여분 전력량/최대 전력 사용량)을 10% 이상으로 유지해야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해진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전기라는 건 대부분 저장이 불가능하고 다른 형태(주로 열에너지)로 사라지는데, 흔히 블랙아웃을 방지하겠다고 무턱대고 발전량을 늘려 예비율을 높이는 건 시스템 전체의 에너지 효율성이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현재 공급 예비율은 36.1%인데, 사용량의 약 36.1퍼센트는 사용하지 않고 버린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예비율이 높을 때 잉여 전력을 저장하고, 전력 수요 피크일 때 활용하도록 하는 ESS의 상용화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ESS의 효율성 및 비용 문제를 고려하면 당장 활용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고, 그리드 차원의 전력과 ESS에서 저장할 수 있는 전력량은 단위부터가 다르기에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그리드가 중앙 집중식(centralized)이기에 분산형과 달리 ESS를 활용하기에 그다지 이상적이지 않은 환경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전력 예비율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낮출 수 있을 것인가, 한 마디로 어떻게 해야 넘어지지 않고 줄타기를 잘할 수 있냐다. 화력, 원자력 등 대형 플랜트를 이용하는 발전 방식이 안정적으로 대규모의 전력을 공급이 가능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의 최근 떠오르는 대체 에너지 자원은 이전에 말했듯이 간헐성과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단위 규모가 작다는 문제 때문에 단독으로 활용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 단점들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전력 계통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인 차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수요와 공급 두 쪽에서 전부 최대한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를 직면하는데, 여기에 잠재적으로 AI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공급량 변동은 주로 당일(혹은 시간별) 기상조건이나 기후와 같은 변수를, 수요량 역시 기상조건이나 계절 변수와 같은 환경적 요소뿐만 아니라 기타 인위적 요소를 고려한다(전력 수요와 공급에 작용하는 자연적, 사회적 요인 관련 변수는 앞으로 공부하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이다). 각 변수에 어느 정도 가중치를 부여하고 결과를 산출해야 하는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데(당장 10년 동안 공부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답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가중치를 부여할 때 사용자(각 가정이나 산업체) 별 전력 사용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지고, 그렇게 수요에 맞게 대응함으로써 효율적인 시스템 관리가 가능해진다. 게다가 발전량이 불안정한 재생에너지 자원의 경우에 있어서도 변동성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놓고 다른 시스템적 요소와 통합해서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공급량 역시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장단기적인 차원에서 원활한 전력 공급이 가능해지고, 시스템의 안정성을 통해 여러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떻게 해야 전력 사용량 관련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그걸 분석해서 최대한 정확한 예측 모델을 내놓는가인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역량을 갖추는 게 앞으로의 커리어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까.
AI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아직 머신러닝과 딥러닝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밖에 없다), 전기공학 쪽 지식 역시 전무하다. 냉정하게 말해 학부생으로 보내는 3년 동안 이걸 다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국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각 단계에서 내가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구체화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릇이지만 결국 대학원을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게다가 에너지 문제라는 게 기술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어서 기술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관련된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하기에 공부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게 약 3주 동안 미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떠올린 생각이다. 대충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목표를 구체화하다 보니 막연하게 존재했던 불안의 그림자가 걷히면서 가려진 시야가 트이고, 분명하게 보이는 길 위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의지를 다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