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목사가 대표로 있던 자유통일당의 현수막이 동네에도 걸리다
20살 때 친구와 광화문 쪽에서 자주 만나고는 했는데, 집에서 바로 가는 직행버스가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일상에서는 쉽사리 보기 힘든 흥미로운 정치적 이벤트들을 눈앞에서 구경할 수 있다는 게 갓 성인이 된 나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끌림으로 다가왔다. 기억나는 것만 해도 안철수의 국민의 당 대표 시절 국토종주 마라톤 이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총선 출마 선언 연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의 인형을 만들어놓고 죄목을 부르며 곤장을 때리는 퍼포먼스, 그리고 우리공화당의 정권 퇴진 요구 시위까지. 좌우 가리지 않고 광장을 가득 채우는 시위 세력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한국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의식에 대해 생각해왔다. 뭐든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타협과 양보보다는 억압과 꼼수로 상대하는 게 요즘 정치의 트렌드가 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20대 들어 중요한 고민들 중 하나다.
예전에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수내역으로 향하는 고가교에 자유 통일당의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원래는 지자체의 복지정책 홍보나 광고 현수막만이 붙어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중앙공원과 수내로 사거리에만 붙던 정치 관련 현수막이 더 많은 곳에 붙기 시작했나 보다. 최근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극찬과 검수완박 법률에 관련해 헌법 재판소가 형식에는 (개인적으로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있지만, 그 취지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기에 합헌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사실 판결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였기에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유통일당의 메시지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형태의 주장이지만, 그래도 저런 생각들 역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놔둬야 한다는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이런 점에서 참 어렵다. 그냥 억압하면 간단한 일이지만(실제 여러 권위주의 정권에서 하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그러한 대안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에 결국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우리공화당은 아는데 자유통일당은 대체 무슨 정당인가 싶어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나무위키에서는 개신교 근본주의와 친미 사대주의, 냉전적 반공주의, 반동성애, 반이슬람으로 대표되는 극우에 가까운 사상적 특징을 가진 정당이라고 설명한다(Chat GPT에서는 조금 틀린 설명을 한다). 그렇다면 퀴어 축제나 이슬람 사원 앞에서의 시위로 뉴스에 나온 사람들은 이 정당과 관련되어 있는 건가. 좀 더 자세히 찾아봐야 알겠지만 당원이 15만 명 남짓한 것치고는 생각보다 사회적 영향력도 크고(실제 모 정당의 최고위원은 이쪽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 활동 반경도 상당히 넓은 것으로 추측한다. 주로 (근본주의에 가까운) 개신교 신자나 고령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당인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세속적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에서 저런 주장을 하는 당을 지지할 리가 없겠지만.
정교분리가 헌법으로 정해져있는 한국에서, 종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정책을 내놓는 자유통일당의 노선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헌법재판소 판결도 부정하는 정당인데 그런 기대를 하면 안 되려나. 그런데 자유통일당의 현수막이 우리 동네에까지 붙었다는 건 그 말인즉슨 점점 동네에 그 당의 사상에 동의하는 사람, 즉 당원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저출산 문제로 젊은 층의 수가 줄기도 하고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집값에 자녀를 가진 가정이 새로 유입하는 경우(우리 가족같이)의 수가 예전만 못해 판교 정도를 제외하면 노인 비중 증가로 인한 인구구조의 고령화는 성남시가 전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다. 뭐 그렇지 않은 동네가 얼마나 되려나 싶지만,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 사회에 그다지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실제로 뉴스에 나오는 극우나 극좌세력의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주연령층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과거 고속성장의 향수에 취해 권위주의의 그림자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오히려 그런 질서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비중이 커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솔직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처럼 사회가 전체적으로 우경화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그저 소수의 케이스만 보고 지나치게 일반화하며 문제를 확대해서 보는 건가.
매일 이런 극단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얼토당토않는 주장을 하고, 그런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수가 표면적으로 늘어나는 건 분명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상이다. 시대가 지날수록 사람들이 똑똑해지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는커녕 이런 극단 세력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늘어나는 건 IT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장년층과 노년층에게까지 확대되면서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매체에 수많은 황색언론 및 가짜 뉴스 유튜버가 난립한 게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인다(변화한 미디어 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이론들이 존재하기에 설명은 생략한다).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는 환영해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여러 부분에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건전하게 참여하기보다는 시위나(우리나라에서 시위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면) 투쟁의 형태로 나타나는 소위 ‘정치충’이 늘어나는 건 경계해야 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투표나 시위 등의 정치 참여도는 높아도 작은 사회적 단위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나조차도 내가 사는 동네의 현안에 무관심한 것만 봐도 그렇고.
그러나 막상 경계만 하지 사람들의 생각이 양극단으로 치우치고 서로 고립되는 전 세계적인 현상에서 민주주의의 실패를 목격하고 있는 우리가 과연 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당장 정치판만 봐도 한탕 해먹겠다고 그들을 이용하면서 사회를 좀먹는 세력이 한둘이 아니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현상뿐만 아니라 그런 부조리한 사람들과도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게 막막한 미래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듯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