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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ul 03. 2023

달그락식탁

아는 사람이 제주도에 괜찮은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작년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되짚어보면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려 말고기 요리 전문점 고수목마와 돈가스 및 경양식 전문점 달그락식탁을 추천해 줬다. 동시에 식당 링크를 보내주려고 네이버 지도에 검색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과 달리 달그락식탁이 함덕 해수욕장 근처가 아니라 제주 시내에 위치해있었다. 게다가 돈가스와 딱새우 파스타 같은 단품 위주로 팔던 메뉴 구성은 돈가스 백반과 제육 백반 정식 같은 세트 중심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같은 이름의 다른 식당이라고 생각해 혹시나 가게 주인이 장사를 접은 건가 싶었지만, 9개월 전에 멀쩡히 장사 잘하던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리 없다고 생각해 자세히 찾아보니 올해에 지금 있는 곳에서 리뉴얼 오픈한 것이었다.


모르던 사이에 찾아온 사소한 변화이지만, 조금은 충격적이다. 제주도 여행 가이드북에서 추천해 주는 맛집이었는데, 내가 치즈돈가스에 환장하는지라 한 번쯤 가봐야겠다 머릿속에 담아두다가 당일이 되어서야 우연히 지나다 발견했다. 원래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오전 내내 자전거를 탔던지라 더욱 맛있었고, 실제로 맛도 훌륭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와야지 생각했었는데, 가게가 완전히 바뀐 지금 와서 보면 기약 없는 약속일뿐이었다.


가게의 뒷문이 단독주택 마당과 연결되어 있어 워라밸 측면에서 나름대로 이상적인 공간이었는데(특히 마당이 엄청나게 넓었다), 그런 낭만대로 살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컸던 걸까. 차를 갖고 오지 않고서는 접근성이 좋지 않아 손님이 별로 없었다지만, 그것과 별개로 메뉴 구성까지 바뀐 데에는 가게 주인만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더라도 어딘가 씁쓸하달까. 내가 인식한 달그락식탁이라는 식당의 이미지로부터 많은 변화가 생겨 간판 이름만 같지 완전히 다른 식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오늘 나를 즐겁게 해준 일상이 내일도 똑같이 반복될 거라는 확신 따위는 할 수 없는 세상이다. 마침 오늘 집 근처 버스 정류장을 지나니 군대에 있을 때 개업했던 정육점이 폐업하고 버블티 가게가 새로 오픈한다. 20분 동안 그토록 찾아헤매던 돈가스집조차 그대로 남아있지 않는 세상에서 내일은 어떨 거라고 확신하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그저 나름대로의 근거와 경험을 가지고 이후의 시간을 유추할 뿐이다. 물론 그 근거가 많을수록 유추는 더욱 정교하고 정확해지겠지만. 내가 무신경하던 9개월 사이 이 세상에 찾아온 변화는 달그락 식탁이라는 형태를 내비쳤다. 그리고 그 형태 속에서 야구장에 갔다온 후 누워서 핸드폰이나 하다가, 고작 하루밖에 안 된 자신과의 약속조차 지키지 않은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 사이에도 분명한 차이를 발견했다.


판의 경계에 서있어 끊임없이 흔들리는 세상을 사는듯하다. 모르던 사이 노력을 기울여서 쌓은 모래성 따위는 손쉽게 흩날려버릴 운명이다. 나름대로 잘 만들어뒀다고 생각한 군대에서의 습관들이 나와서 그토록 쉽게 무너지는 건, 콘크리트와도 같은 규칙적인 기반이 사라지고 모래사장 같은 물렁한 바닥 위에 서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순간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던 순간 출렁거리는 파도와도 같은 생활 속에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 모습과 현실의 대조가 더욱 분명해 보였다. 작은 식당에 생긴 변화에 아쉬움을 느끼기에는 나 역시 굳건한 기반 따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라. 숫자는 올라가고, 과거의 흔적들이 떠나가며 기억 역시 희미해지는 가운데 굳게 서있는 건지 앞으로 나아가는 건지 구별조차 되지 않은 채 흔들리는 내 모습이 어딘가 달그락식탁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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