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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Jan 31. 2024

두 번째 산

텔로스 위기


p7.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종종 생각했다. 남은 인생은 너무 막막한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또 어떤 일이 나에게 궁극적인 기쁨을 주며, 내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명확한 답은 당연히 없다.


p.24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은 개인이 첫 번째 산에서 두 번째 산으로 넘어가는 과정과 방식을 보여 주는 것, 즉 더 깊고 더 기쁜 인생이 어떤 것인지 단계적으로 또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독자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두껍고 지루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읽었던 부분을 또 읽으면서 나는 첫 번째 산도 올라가지 못했는데 두 번째 산을 오르려는 욕심을 가졌다. 나이로 봐서는 이제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것이 맞는데 나는 내가 가진 핸디캡이 나를 지금껏 발목 잡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잘 들리지 않는 것과 내 귀에는 남이 듣지 못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24시간 듣고 있다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나의 뇌신경 세포가 손상이 되어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 사십이라는 산을 지나 오십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는데 나는 변한 것이 없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속 빈 강정처럼 실속이 없다.


괴롭다. 나는 내 병으로 살고 싶은 생각보다 죽고 싶은 생각을 더 하며 살았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알지만 바보처럼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 한심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의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나의 말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일이 아니라면 말을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녹내장은 진행 중이었고 만성피로에 오십견에 디스크까지 삶이 불편한 것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삶이 주는 고통은 끝이 없었다.


지금의 나를 데이비드 브룩스는 그래도 두 번째 산을 오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면서 장애인에게 주는 사회적 배려가 혜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장애인들의 삶은 보통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삶이 불편하고 괴롭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산은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필요한 것이었다.


p.51 자기를 알고자 한다면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기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p.51 건강한 공동체 건설과 인간관계 회복을 위한 풀뿌리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p.53 행복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데서 비롯되지만, 기쁨은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데서 비롯된다.


내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내가 그런 실수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떤 일을 하거나 계획할 때는 항상 그 배우자와 의논하라는 것이다. 함께 살기로 했으면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그 배우자와 상의하라는 것이다. 나는 한 번의 실수로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우리 가족도 잃어버릴 뻔했다. 왜 그때 당시에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잘못된 생각이 나를 휩싸게 되면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하게 된다. 어떻게 하다 나는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p.99 인생의 계곡에 떨어진 사람의 부와 명성과 성취가 아무리 많고 높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 사람을 계곡에서 구원해 주지는 못한다.


p.102 그러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인생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다.


p.102 이것은 일종의 텔로스(목적) 위기이다. 텔로스 위기에 빠진 사람은 자기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철학자 니체는 인생을 살아갈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과정'이든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목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여정에서 만나는 온갖 고난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나는 어떤 괴로움과 고통이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통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자신의 아픔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위안을 얻는 것처럼 나는 내 글을 쓰면서 위안을 얻는다.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이다. 십 대의 나와 사십 대의 나는 십 대 때의 모든 일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만 나는 십 대가 아니라 사십 대 중반이라는 것이다. 십 년 후면 회사를 퇴직하고 홀로 서기를 해야 할 나이인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될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수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내게 부족한 것은 책과 글이었다. 하지만 책이 주는 기쁨과 글이 주는 기쁨은 기쁨의 네 번째 층 정신적인 기쁨이었다.


p.201 책을 쓴다는 것은 끔찍하고 진이 빠지는 투쟁이다. 마치 어떤 고통스러운 질병과 긴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다. 저항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악마에게 억지로 등을 떠밀리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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