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배울 것인가

배움

by 해질녘

너무 일만 열심히 일하는 워커(worker)가 되지 말고 우리 주위의 산과 들과 바다와 강을 거닐 줄 아는 워커(walker)가 되어야 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러너(runner)가 되지 말고 우리 주위에 우리를 가르쳐 주는 자연과 인간과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배우는 러너(learner)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리더(leader)가 되려면 책과 자연과 인간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리더(reader)가 먼저 되어야 한다.


이 세 단어의 공통점이 있다면 나는 배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살면서 좋고 나쁜 경험들과 생각들이 하나, 둘 쌓이면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들이 스스로 배움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어릴 때 아무리 경쟁을 잘해서 일등을 한다고 해도 어릴 때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중학생만 되어도 받아쓰기 백점 맞는 친구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크면 다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시험의 잣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들게 대학 가서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외워서 시험을 잘 보고 점수 잘 받고 졸업하면 그것으로 대학의 역할이 끝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배움은 암기가 아니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은 알 수 없는 것을 스스로가 알고자 한다면 십 년이든 이십 년이든 파고 나면 저절로 그 앎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모르는 것을 모르고 쉽게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면 모를 수 없게 된다.


선생님은 먼저 태어나서 삶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지 사람들을 훈계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 도움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집트 문명의 파라오왕도 영원불멸할 것 같았지만 시간 앞에서는 한 줌의 모래와 같다.


시간의 끝에서 누구나 죽음을 마주하지만 그 죽음 앞에서 괴로워할 필요 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시간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죽음에서 슬퍼하는 것은 각자에게 찾아오는 죽음의 시간적인 상대성이 우리를 힘들 게 만드는 것이다.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니고 죽을 사람이 아닐 것 같은 사람들이 죽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이태원의 핼로윈 참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단점이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이런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좀 더 많은 리더를 만들고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한 판단과 대처로 그런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이목을 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안전하게 이끌어가야 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장에서 호루라기만 있었어도 사람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 안타깝다. 내일부터 내 주머니에 비상물품이 하나 더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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