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별잡이나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이 과학과 밤하늘을 좀 더 친숙하게 만들어주었다면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는 문과 남자들에게 과학도 문과(자연철학)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그 스토리는 재미있었다.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인간의 내면관찰과 인간의 외면(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 관찰처럼 서로 지적으로 만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은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을 만나는 것처럼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로 보였다.
278쪽 수학은 수학자들이 창조한 추상의 세계다. 수학자는 수학적 실재를 서술하려고 수학을 연구하지 않는다. 수학의
아름다움과 수학적 진리의 영원성에 끌려 추상의 세계를 구축한다. 자신들이 창조한 것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물리적 실재를 서술하는 도구가 되어 현실의 선악과 관계를 맺을지는 그들 자신도 모른다.
과학은 인문학처럼 아리송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그리고 객관적인 실재를 수학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33쪽 그는 신이 창조한 우주의 모든 천체는 완벽한 구형이고 원운동을 한다고도 했다.
'원(circle)'이라는 말이 영어로 One이 되고 그것은 0에서 1을 만드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의 생각에 그 기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원을 닮았다. 그 원 안에 난 인류 창조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라는 것이 개인적인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겠지만 존재가 있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하필 내가 그 속에서 그 시간에 존재하여 글을 쓰고 사라져 버렸을까.
수억 년이 지나고 나면 아니 수십 년만 지나도 나는 역사 속에서조차 아무런 기억을 남기지 못하고 과거의 사실이었는지 조차 미래의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현재겠지만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끝없는 시간의 쳇바퀴 속에 내가 인간으로 살아갔었고 죽었다는 것을 기록한 문서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 삼아야 할 뿐이다.
수많은 진리의 위대함조차 시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물리적인 나의 존재조차 한 줌 재와 다를 바가 없고 내가 아등바등하며 진리를 탐험하며 어둠을 밝혀 책을 읽어나갔던 것조차 나의 존재가 사라지게 되면 신의 존재에 의문을 던진 것도 그 시간과 공간도 영원히 나와 함께 사라진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나온 수많은 나와 그들 속에서 발견한 지금의 나는 철학적으로 고찰할 대상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정말 살아있는가. 잠을 자는 나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죽은 나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내가 죽으면 저런 모습이겠구나라는 상상을 해본다. 죽음과 함께 사라진 삶의 모습들이 전원이 꺼진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럼 세상은 정말 있었던 것인가? 내 존재의 죽음으로 세상은 다시 아무것도 없음으로 가버렸다.
238쪽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석가모니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문장이라고들 한다.
눈을 감으면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눈을 뜨면 그 공간이 색으로 감싼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나의 눈으로 그 형태를 인지하고 만유인력을 생각하게 한다. 고전 물리학의 법칙은 눈을 통해 인지하는 공간에 대한 해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색으로 인지할 수 없는 미시세계의 법칙으로 공간 안에 공간이 존재하고 그 시간 안에 시간이 있는 것처럼 시간마저도 영과 일초사이의 짧은 시간 속에서도 그 시간을 측정하고 있었다.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 중에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아래에 남기며 나는 아직도 자연이 하는 여러 이야기 중에 몇 가지만 알게 되었고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120쪽 나무는 한 자리에 서서 계절을 여행한다.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 나무도 물을 품고 있다. 물이 얼어 팽창하면 세포가 터진다. 죽지 않으려면 겨울 여행을 잘해야 한다. 동물은 세포에서 당을 태워 열을 내지만 식물은 다른 방법으로 추위를 견딘다. 겨울이 다가오면 앞에 보내던 수분과 영양분을 끊는다. 그래서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우리에게 가을의 정취를 선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나무는 둥치와 가지의 세포에서 물을 내보내고 당과 단백질 같은 영양분만 남겨 세포내부를 시럽 상태로 만든다. 세포 사이 공간에는 물이 있지만 혼자 돌아다니는 원자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순수해서 섭씨 영하 40도까지 얼음 결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서리와 진눈깨비와 눈보라와 혹한을 견디고 나서 봄의 징후를 포착하면 나무는 물을 세포 안으로 끌어들여 새잎을 틔우고 광합성을 재개한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랩 걸》(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알마, 2007) 274~2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