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주라는 시간은 일 년이 52주라고 했을 때 80세까지 4,160주가 나온다.
한동안 나는 책도 읽히지 않고 글도 쓰여지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한 것이 해소가 되지 않으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트위터도 글 없는 빈하루가 그렇게 빨리 지나가 버린다.
내 트위터의 트윗개수가 2009년 9월부터 지금까지 한글로 140자로 작성된 3,214개의 게시물이 대략 449,960자가 내 트위터에 담겨있다.
매일 쓰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4000주 동안 4000개의 트윗을 올리려면 하루에 1개씩만 적는다고 해도 2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786개의 트윗을 올리는 것은 일주일에 하나씩만 올려도 십오 년이 넘게 걸리는 글쓰기의 양이었다.
만약 15년이 지났다고 하면 내 나이는 만으로 육십 세가 되었고 4000주라는 시간보다 내 트윗 4000개가 더 빠르게 도달할 것이다. 4000개의 트위터가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도 내 삶의 이십 년은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새로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트위터에도 항상 계획과 시행착오가 많이 있었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나는 책도 읽고 세바시도 보고 트윗도 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것에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지속성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진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
33page 당시에 나는 왜 모든 시간관리법들이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위해 시간관리법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해마가 손상되어 기억이 잘 되지 않을 때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4개 정도의 외국어를 공부했다. 외국어도 내가 좋아하는 과목인데 외국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서서히 잊혀 버린다는 것이다.
장기기억으로 가야 할 단어와 문장들이 계속 헛돌다가 사라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런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 된다는 것인데 세상 일이라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없다는 데 있다.
배울 당시에는 상당히 열정적으로 배우다가 그것이 다른 일상들로 인해 나와 멀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한심하고 이해되지 않는 나의 상황을 인정해야겠기에 나는 끝없이 나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외국어 공부도 일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나의 지독한 공부습관 중에 하나였다.
56page 생산성 중독자로서의 나의 인생은 나 자신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믿었지만, 내가 부지런히 처리했던 일들은 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었다는 뼈아픈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책과 도구들이 나의 관심 없음으로 인해 작심삼일이 되어야 했던 수많은 기록들이 트위터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그런데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133page 인간이 과거를 통제할 수 없고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종교를 비롯한 수많은 영적 전통들이 왜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자신과 관련된 유일한 시간, 즉 지금이 순간 이곳에서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