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감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쓰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나와 같이 공감에 반대하도록 여러분을 설득하는 것이다.
급진적인 입장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과격한 입장은 아니다. 이 책은 사이코패스를 지지하는 섬뜩한 책들과는 다르다. 공감에 반대한다는 말은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만약 착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공감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이다." 공감의 배신 - 프롤로그
여기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은 시인처럼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문장을 읽고 공감을 할 수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공감이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책으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나는 그 공감 때문에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계속 보냈어야 했을 것이다.
공감은 우울을 낳고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나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타인에게 강하게 명령할 수 없었고 남을 이겨내기 위해 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힘들지만 나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 사회적 잣대를 이겨내야 했다. 공감 속에 나는 없었다. 그들의 괴로움과 어려움과 우울만 있었다.
나는 공감은 나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타인을 위한 감정이기 때문에 나는 책 속에서 수많은 공감을 느끼며 같이 슬퍼하고 우울하고 괴로워하고 눈물짓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아니지만 그것이 나의 것인 양 나는 그들보다 더 슬퍼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일 때문에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로 마음 고생하시고 세상을 등진 일 때문에 우리는 이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실제로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 괴로움을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당사자의 문제로만 남아 있었다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연민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인간으로 다시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공감이라는 단어를 재정립하기로 했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어떤 공감을 얻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가지고 글을 쓰기로 했다.
인상 깊은 문장 (against empathy)
‘공감’이라는 용어를 마치 도덕, 친절, 연민의 동의어처럼 사용한다.
도덕의 견지에서 보자면 우리에게는 공감능력이 없는 편이 낫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울 때”비로소 둘 사이의 충돌이 종식될 것이라고 한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의 말에 많은 평론가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데 애를 먹고 있고 자기도 모르게 타인이 느끼는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함께 느끼려고 애쓰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 공감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