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을 읽고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과 김형석 교수를 만든 백년의 독서였다. 첫 번째 책에 관한 글을 쓰고 두 번째 책은 여기에 새로 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덕분에 랜디 포쉬의 멋진 마지막 강의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것을 보게 되었고 느끼게 되었다.
김형석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한국에 옮겨 놓은 것처럼 그의 삶이 그 책 속에서 꽃 피고 있었다.
이국적이지 않은 그의 기록들과 책들이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읽었으면 하는 책들이 많이 있어서 좋았고 책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도 좋았다. 책을 많이 읽고 썼으면 하는 대목과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독서율과 관심에 대한 비교도 좋았다. 그 시대에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학술적인 책과 지식들이 일본어로 된 책 밖에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우리가 좀 더 일찍 서양 문물에 대한 번역과 탐색을 먼저 시작했다면 일본으로부터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우리말과 글이 말살되거나 우리 국민들이 희생되는 그런 안타까운 일이 없었을 텐데. 좀 더 일찍 서양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조선왕조 500년의 기록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식인은 전쟁 속에서도 나라가 빼앗긴 상황 속에서도 철수와 영희가 끌려가고 팔려 가고 죽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학교가 일본에 의해 지배되어도 다시 학교에 가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한국에서 학문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일본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빼앗긴 나라와 힘없는 소시민들에게는 그저 사회가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한국어를 지키겠다고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한국어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수많은 독립군들이 아니었다면 그분들이 대한민국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삼일운동 때 같이 만세 부르지 못하고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일본군에 끌려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지식인들의 책은 뜨겁지도 열정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