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는 일-자작시-
철쭉꽃의 꽃말
1. 사랑의 기쁨
(Joy of love)
2. 절제된 사랑
(Moderate love)
3. 인내
(Patience)
4. 첫사랑의 수줍음
(Shyness of first love)
2025년 5월 29일
고등학생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나 수업이 없었다.
모처럼 생긴 여유에 바람도 쐴 겸 혼자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길을 나섰다.
한울누리공원.
이 근처 도로는 밤이면 멋진 야경이 보이고,
메밀꽃 필 무렵이면 도로가에 흐드러지게 꽃이 피는
한적하고 고요한 한라산 중턱의 길이다.
혼자 이곳을 찾은 건 처음이었다.
내가 찾아간 분은 외할머니.
외할머니 이름은 ‘천심’.
태어나자마자 당신의 이름처럼
하늘 같은 마음으로 나를 업어 키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뉴스에서나 들을 법한 큰 사고가 있었다.
1층 약국 안에서 나를 업고 계시던 어느 날,
경운기가 약국으로 돌진했다.
나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피하려다
당신은 손목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셨다.
나의 단짝 친구이기도 했던 분,
나의 외할머니 천심 씨.
아픈 어머니의 빈자리조차 사랑과 희생으로 채워주셨다.
넋두리가 되지 않도록 담담히 쓰려고 했다.
오늘,
주차장에 찾아든
흰나비 한 마리와
하트 모양의 구름을 또 보았다.
비 오고 난 뒤 안부를 묻는다
-안세아-
비 오고 난 뒤
안부를 묻는 인사
푸른 감에 톡톡
맺히는 물방울
비 오고 난 뒤
안부를 묻는 인사
“별일 없지?”
바람에 살랑살랑
알 길 없는 인기척
물방울
또록 떨어진다
“다음에 밥이나 한 끼 하자”
심심한 위로 앞,
떫은 감 맛이 난다
맑게 개인 가을 하늘
설익은 감들이 그득히 익어가면,
드르르르 잠자리들
모여든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안세아-
이제 피어나는 꽃망울처럼
저 언덕 너머
노을빛 지는 순간
우리 살아가야지
꽃과 나비가 되어
안부를 묻던 순간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사랑이란, 안부를 묻는 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 혹은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사는 행동은 하지 않는지 반성하면서 살기로 한다.
당신이 소중한 만큼.
26년 2월 19일
어쩌면 나를 들여다 보고, 사랑하는 나를 돌보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분명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천심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들이 있다.
알콩달콩 숲으로 매미를 잡으러 다니고,
바다로 보말을 잡으러 함께 들어가던 뜨겁던 여름날.
산딸기를 따 주시던 미소의 씨앗이 싹트던 그때부터 감성의 뿌리로 자라고 있지 않았을까.
가을이면 나무 그늘 아래서 재밤을 주워 담던 시간.
겨울철 귤을 딸 때면 나는 당신의 귤바구니에 있던 귤을 슬그머니 내 바구니로 옮겨 바구니 수를 채우곤 했던 철부지 소녀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어머니와 재작년까지 귤 따며 빠지지 않는 소재로 등장하던 이야기였다.
할머니의 첫 번째 집에는 제주에서 돗통시라 불리던 흑돼지우리가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돼지가 바로 아래 없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했다.
감나무도 한 그루 있었고, 옆으로는 언덕인지 오름인지 모를 곳에 귤밭이 보였다.
집 주변 나무들은 겨울을 알리는 듯 가시나무가 되어 있었다.
아궁이를 지피는 솥에서 지금의 불멍을 오래전부터 일상처럼 해왔고,
구들장에 앉아 저녁밥을 먹으면 바닥이 뜨끈했다.
천심씨의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꿈나라로 빠지던 어린 날이 떠오른다.
밤마다 바람에 흔들리던 창은 무서웠고, 저녁이면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요강을 마루에 두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집, 세 번째 집의 기억이 이어진다.
왜 이사를 했는지는 나중에 커서야 알게 되었고, 결국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중학교가 되던 해, 천심씨가 해주셨던 카레라이스에 열무김치.
중학교 때 급식소가 생기기 전까지 싸 주신 도시락을 들고 다녔고 친구 도시락까지 싸 주셨다.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죽기 전에 어릴 때 살던 전라도 어딘가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지만 가지 못하셨다.
그리고, 외손주가 태어난 이후 백일 즈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에 다녀가셨다.
결혼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밥 한 끼를 차려드린 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것 같았다.
그 이후 외손녀의 아들이 돌이 되던 해까지 병원에 계셨다.
나는 아이를 업고 눈이 오던 날에도 병원에 갔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타칭 순둥이라 불리는 아이 덕분에 매일 병원에 돌도 안된 아이를 업고 가서 할머니를 돌볼 수 있었다.
추운 겨울 함께한 시간은 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천심씨는 애교 많고, 따스한 분이었다.
외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더는 슬픔에 빠져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매일 안부를 묻는 일은 천심씨 덕분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슬플 겨를이 없었다.
아이의 웃음과 일 속에서 완벽함을 채우려고 노력했었다. 혼자만의 시간과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은 결국 시간이 흐른 후, 몸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애도의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괴로워하지 않은 시간만큼 괴로울 수도 있기에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비를 보았다.
가끔 꿈에서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바로 어제였다.
묘지를 정성스레 닦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자주 올려다보지 말고
가끔만 올려다보며 살아도 돼.”
사진 속 철쭉꽃 위에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제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자주 올려다보지 말고
가끔만 올려다보며 살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