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이름표-농경일기-

by 안세아

26년 3월 14일


어머니는 막내인 내게 밭의 일부 10평 남짓한 땅을 빌려주셨다.
밭을 관리하는 대가로 무료 임대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나는 밭을 가꾸는 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 포크레인이 네번 들어왔다. 그런데도 사람이 해야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었다.
눈으로 보고, 직접 느끼며 해야하는 일들이 있다고 하셨다.
농사도 그랬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말씀처럼.
평생 농사를 지어온 아버지 곁에서 시집와서 귤농사를 지으셨다고 했다.

다른 귤 품종을 하라하셔도 추억을 고집하시는 듯 보였다.

관리란 일주일에 두 번 와서 물을 주고,
눈에 보이는 기타 일을 거드는 것.
일주일 만에 다시 갔을 때
시금치 뿌리가 손톱만 한 길이,
그러니까 1cm쯤 자라 있었다.
그 작은 뿌리를 보고 감탄했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더니 정말이었다.
지난주의 봄바람은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자고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텃밭에 미리 만들어 둔 이름표를 꽂았다.
재활용해서 쓸 수 있는 이름표였다.
5천 원이면 열 개쯤 살 수 있었다.
그 옆에 심은 케일과 시금치는 일부러 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려 있던 나무 의자를 다듬고
오일스테인을 바르는 작업도 했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늘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들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들 침대도 직접 만들어 주셨고,
평상도, 리어카도 목재로 뚝딱 만들어 내셨다.

나무향기가 봄 바람에 스치던 때,
잠시 차 한 잔을 마셨다.
집에서 깎아온 사과를 한쪽씩 나눠 먹었다. 아삭아삭하니, 달콤했다.
요즘 어머니와 나누는 행동의 언어들이 소중하다.
자꾸 기록하고 싶어진다.
종종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말 안 해도 다 안다.”
무엇을 다 안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 삶을 친절히 대하며,
주어진 소중한 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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