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이미 배움의 즐거움을 가지고 태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부모의 얼굴을 보며 표정으로 감정을 배우고, 부모의 언어를 들으며 모국어를 습득한다.
걸음마를 시작해 신발 신기, 그림 그리기, 스스로 밥먹기까지 아이들은 많은 부분을 환경으로부터 스스로 학습한다.
아이들이 잠에 들지 않으려는 이유를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세상이 너무 재미있어서.
세상을 통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잠에 들지 않으려 울고불고 하는 것이라고.
뭐, 검증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일리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경험(학습)의 즐거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뭣도 모르지만 자신이 이루고픈 꿈이 한두가지씩은 존재한다.
팔땡이처럼 그림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아이돌이 되고 싶다거나,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하물며 로봇이 되고 싶다, 공룡이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만 말이지만 분명 되고 싶은 것이 존재한다.
그만큼 아이는 세상에 대한 재미와 열의와 동기를 느끼는 상태로 살아나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모로부터 부모의 방식대로 공부를 강요받는다.
삶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모든 것은 학습이다.
하물며 실패도 학습이고, 멈추어 쉬는 것 또한 무엇인가 남긴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형화된 공부라는 틀에 맞추어 아이들을 가두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공부만을 고집하며 그 안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길 바란다.
며칠전,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나는 깜짝 놀란 것이 있다.
학교에 아이의 장래희망을 적어내는 칸에 없음. 이라고 적어낸 학부모들이 많았다는 것.
혹은 아이들이 바라고 있는 아이돌과 같은 꿈을 묵살하고 있어 보이게끔 다른 직업을 써서 냈다는 것.
그리고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직업은 대부분이 소위 '사'자 직업이었다는 것.
고작 초1인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의 결핍을 들이밀며 아이의 직업을 이미 정해놓고, 그 직업을 위해, 혹은 그와 유사한 직업을 위해 달리라고 채찍질한다.
나는 팔땡이에게 장래희망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누어 보고 만화가가 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리고 부모가 바라는 장래희망은 무엇이 되었든 아이가 원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무슨 권리로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가.
아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버젓이 있는데 왜 애써 전혀 관련없는 직업으로 방향 전환을 억지로 시키는가.
모든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학습을 즐기고, 좋아하는 관심사를 가지고 스스로가 찾아나가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분명 허무맹랑할지라도 영유아기때 이미 무언가 관심사를 찾기도, 흥미를 가진 활동을 해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모가 생각하는 공부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스스로 학습해 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팔땡이는 어렸을 때부터 끼적이기를 좋아했다.
스스로의 동기로 하루종일 끼적이고 있다보니 (그땐 그림이라 부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소근육이 남다르게 발달했었다.
자신이 즐거워 자신의 동기로 하루종일 종이에 끼적거리던 것이 학습이 되어 또래에 비해 남다르게 빠른 소근육을 가지게 되었고, 실제 영유아 베일리 검사에서 소근육이 엄청난 개월수로 치고 나가 검사해 주시는 선생님이 "이게 가능한 건가요? 증거 자료로 사진 좀 찍어 가겠습니다." 라고 사진과 영상까지 찍어 가셨다.
소근육 백날 부모가 들이민다고 키워지는게 아니다. 그저 아이의 흥미를 막지 않았다.
그렇게 팔땡의 소근육은 남다르게 빨랐고, 4세에 처음 글을 읽으면서 쓰기까지 동시에 가능하게 되어 특별히 글을 쓰는 법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어느날, 4세의 팔땡은 아파트에 매달려 페인트칠을 하는 아저씨를 한참이나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내게 말했다.
"엄마, 나도 아파트에 물감 칠하는 사람할래"
그리고 나는 아이의 의견을 온 마음 다해 존중했다.
"아파트 페인트 칠하는게 재미있어 보였나 보네. 아파트 페인트 칠하니 정말 아파트가 예뻐 보이네? 너도 나중에 커서 아파트 페인트 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야."
그리고 아이의 꿈은 한동안 아파트 페인트 칠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아파트 페인트 칠하는 사람이 되겠다 말을 하고 다녔고, 시댁과 친정에 가서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자신은 아파트에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이 될거라고 말하곤 했다.
사회적으로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고, 때론 육체적으로 힘든 일임에도 아이의 삶이기에 아이가 선택한 일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존중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의 페인트공이라는 직업은 화가를 거쳐 만화가까지 주욱 이어져 아이의 꿈이 되었고, 나는 그 꿈이 무엇이 됐든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줄 생각이다.
아이들은 분명 뚜렷하진 않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그것을 묵살해 버리곤 한다.
취미로만 하고 살어!
그것보단 이게 낫지 않겠니?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지.
세상에 직업은 다양하고,
꼭 공부만이 답이 아님에도
사회적으로 촉망받는 직업을 위해 공부만을 들이민다.
8세, 아이의 꿈이 점점 또렷해져가는 시기.
현재에도 아이가 페인트공이 되겠다고 하면 나는 주저없이 학교 서류의 장래희망 칸에 페인트공을 적고 아이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흥미롭고 관심이 간다면 그걸 하고 살아야지.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고,
세상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아이는 그것을 이미 찾아 나가고 있는데, 부모가 나서서 네 흥미보단 내 흥미로 라며 막아버리면 아이가 얼마나 삶에 무기력을 느낄까.
심리학 실험 중 개에게 전기충격기를 사용하여 전기충격을 반복적으로 가하고 도망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둔 실험이 있었다.
그렇게 개는 피할 수 없는 환경에 무기력을 학습하였다.
그리고 이후 도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다시 반복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하였을때 개는 피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못한체 계속해서 전기충격을 온 몸으로 맞아 내고 있었다.
이 학습된 무기력은 인간에게서도 나타나곤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우울증이라 부른다.
이처럼 자신의 욕구를 차단당하고 엄마의 바람만을 주입받은 아이들은 나중엔 무기력해져 아무 생각없이, 동기없이, 꿈없이 영혼없이 공부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
물론 그 사이에서도 부모와의 합이 맞아, 혹은 공부에 적성을 찾아 치고 나가는 아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권이 아닌, 타인의 바람을 충족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그들의 삶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지 그것이 의문이다.
아이가 만약 페인트를 칠해 행복하다면 나는 기꺼이 페인트공이 되길 바란다.
아이가 만화를 그려 행복하다면 기꺼이 만화가가 되길 바란다.
영혼없는 판사와 변호사가 되어 살아가는 것보다
영혼 충만한 만화가가 훨씬 건강한 삶이라 생각한다.
만화가가 꿈인 아이는 오늘 하루도 즐겁다.
하루종일 만화책을 읽고 만화를 따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아이에겐 행복이다.
아이의 꿈은 점점 현실에서 구체화되어 간다.
버스정류장에 붙은 웹툰학원의 광고문구를 보고 학원에 보내달라며 콕 짚는다.
아이의 요구에 학원에 전화해보니 적어도 10세부터 다닐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 조금은 더 대기해야 하지만.
웹툰학원에서 애니고등학교 00명 합격 글을 보고는 자신도 애니고등학교를 진학하겠다며 매우 구체화된 꿈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사자 직업보다 만화가라는 직업이 못하다 생각하는가, 사자보다 페인트공이 못하다 생각하는가.
나는 부모의 의지로 된 사자 직업보다야
내 의지로 된 페인트공이 훨씬 가치있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또렷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흥미를 찾은 아이가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
팔땡은 만화가가 원픽이긴 하지만 여전히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화가를 겸업하고 싶기도 하다고 한다.
그림책 동화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하다고 한다.
그리고 꼭 꿈은 하나만 가져야 해, 하나에 집중해 가 아닌 무엇이 되었든 원하는 모두를 경험해 보라고, 만화가와 카페사장을 겸업하는 실제 만화가들을 알려주기도,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알려주기도 하며 아이의 작은 꿈 하나라도 꺾지 않았다.
아이의 눈은 오늘도 초롱초롱 밝게 빛난다.
열정에 타올라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한다.
열심히 스토리를 짜고 글을 쓴다.
아이에게 미래는 자신의 흥미가 모두 꽉 막혀 차단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고 자신이 상상한 대로 그려지는 밝은 미래다.
그리고 그런 내 아이에게서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