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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Dec 24. 2020

자기최면속에 감춰진 우울

돌즈음까지는 우울증을 극심하게 맞닥뜨리면서 이러다 죽겠다 싶을 만큼의 큰 위협에 휩싸였었는데 이후 조금씩 생활에서 안정을 되찾고 육아동지들을 사귀는 등의 나름 즐거운 일상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내 우울증도 끝난지 알았다.

36개월이 가까워올 즈음 아이를 향한 계속되는 분노와 죄책감에 힘들어 상담센터를 찾게 되었고 센터에서 실행한 다양한 심리평가를 통해 나온 진단은 '우울'이었다. 우울이라는 검사결과를 받아들고 나의 첫 반응은 "네???" 였다. 아주 의아했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가 우울감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않는다 생각했고 분노와 우울은 현저히 다른 맥락의 것이라 생각을 했다. 예컨데 분노는 부정적이지만 과잉에너지상태, 우울은 에너지수준이 낮은 상태라 생각했기에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에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상담사의 결과를 부정하기엔 당시 진행한 MMPI 심리검사는 신뢰도와 타당도가 갖추어진 공신력있는 검사로 치료장면에서 70프로 이상의 임상심리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검사기에 결과가 잘못되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상담사는 나의 경우 '육아를 하는 나는 행복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나는 행복하다.' 라는 자기최면을 거는 것으로 보이며 결국 스스로에게 세뇌당해 우울하지 않고 행복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당시 나는 육아에 대한 강박과 완벽주의로 가정보육을 꽤나 오래 하고 있었다. 가정보육이 정말 미치게 힘들었지만 스스로는 '이게 정답이지. 다들 힘들어서 기관을 보내는건데 내 새끼 내 의지로 태어나게 했으면 적어도 36개월은 부모 품에서 끼고 키우는게 의무아니야? 그 정도도 못할거면 왜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는거야?' 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오만하고 재수없는 생각일 수가 없다. 그때의 나는 육아강박에 사로잡혀 36개월의 신화, 애착이론과 같은 단편적인 사고밖에 할 줄 몰랐고 그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보니 가정보육을 강박적으로 해내겠다는 생각, 육아를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나는 행복하다. 엄마로서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행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정보육이 힘들지만 행복하기도 하다.' 라는 자기최면을 계속해서 걸어온 것이고 놀랍게도 나는 정말 내가 행복한 줄, 우울하지 않은 줄 알았다.

당시의 나는 매일이 무기력했고, 아침에 눈 뜨기가 너무 힘들었다. 매일 눈 뜨는 순간부터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부담이었고 일상생활을 하는 내내 잠이 쏟아졌다. 밤마다 불면에 시달렸으며 하루 12시간씩 자는데도 불구하고 1시간에 한번씩 깨거나 매일 수가지의 꿈을 꾸고 자주 악몽에 시달렸으며 수면의 질이 엉망이었다. 많은 시간을 수면에 투자했지만 피곤한건 전혀 나아지질 않았고 나는 그저 내가 잠이 많은 사람이라 단정지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동기때부터 잠이 많았어서 늘 엄마는 "네가 키가 큰 이유는 잠을 많이 잤기 때문" 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기에 원래 잠이 많은 사람이라 가벼이 치부했었다.

상담사는 현재 느끼는 모든 증상이 우울한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이라며 스스로 우울을 자각하고 수면을 적절히 조절해볼 것을 권장했다.
그리고 12시간의 수면시간을 억지로 8시간으로 줄여 보았는데 첫 일주일은 너무 힘들었으나 점점 하루가 활기차지고 평소보다 짧아진 수면시간이었지만 수면의 질이 훨씬 상승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아동기때부터 수면시간이 길었던 것이 어쩌면 그때 이미 우울의 증상이 있었던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불안하고 불행한 아동기를 겪어왔지만 당시엔 성마름이나 반항의 형태로 나타났기에 우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심리학을 공부하며 성마름과 반헝이 아동기의 우울증상일 수 있음을 알게 되고나니 어쩌면 아동기때 이미 우울을 경험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스스로는 분노를 자주 느낀다고 했지만 심리치료기간동안 감정일기를 쓰면서 주로 느끼는 감정이 분노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짜증을 분노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상에 짜증이 베이스처럼 깔려 있었고 그것이 우울의 증상으로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심리치료를 통해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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