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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Apr 08. 2022

PTSD

블로그에 나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쏟아부었음에도 마지막까지 꺼내지못한, 기저의 저 깊은 곳에서 곪을대로 곪아버린 나의 어린시절의 상처 하나가 있다.


어린 시절, 내게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큰 상처였고, 그것은 사는 내내 나를 짓누르고 옭아매었으며 나는 결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 사건이 결국은 나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왔다.


3년전 상담때,

나는 처음으로 상담사라는 사람에게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꺼내어 보지못한 비밀을 알렸다.

당장 내가 죽을것 같았기에, 내 정신이 온전치 않았기에, 살고자, 살고 싶어서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였다.

상담사는 꽤나 진지하게 들어주었지만 나의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 있고, 또한 내가 확대해석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상담으로 그 일에 대해 어떠한 시원한 해결책이나, 실마리는 찾을 수 없었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해석을 달리 하게 되었긴 했다.


내가 확대 해석했었을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건이 어쩌면 진실이 아니라 나의 왜곡일 수 있구나. 생각하니 한결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이 남아있었고, 그저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상담사가 제시한 가설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맘이 편하기 위해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그렇게 똥을 덜 닦은 마냥 찝찝한 채로 3년을 살아왔다.


내게 불현듯, 끊임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침습해오던 그 일과 관련된 감정이나 생각은 사고의 전환으로 많이 사라졌다.

더이상의 침습은 없었지만 그것이 지우개로 깨끗이 흔적을 지운 느낌이 아니라, 볼펜으로 직직 대충 그어 지워둔 것마냥 가끔씩 이게 맞나? 하는 의심은 끊임없이 있었다.


그래도 편안하니까.

내 맘이 편하니까.

그렇게 3년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오다

이번 상담에서 어렵사리 상담사에게 털어놓았다.


이번 상담사의 반응은 3년전의 이전 상담사와는 사뭇 달랐다.

내 말을 신뢰하고, 내 말이 곧 진실인것처럼 받아들였다.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 있고. 확대해석 했을 수 있다는 나의 말에도 상담사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리고 나의 아픔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르겠다.

이것에 대해 맞다. 아니다.

정답을 여전히 알 수는 없다.

이미 지난 과거고 알 방법이 없다.

그리고 안다한들 해결책 역시 없다.

과거는 바꿀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모르는게 약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들쑤셔 놓는다고 해결되는건 없으니까.

상담이 해결을 해주는건 아니니까.

나를 알고 인정하는 순간 자유로워 진다고 하지만

과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상담사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였고,

삶에 엄청난 풍파를 많이 겪어 왔고,

사실 그러하기에 삶이 너무 힘들었을것 같다.

살고 싶지 않았을 수 있겠다.

라고 했다.

늘 불안정하고 불안한데 공부가 될리가 없었을 거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동기 조차 생기기 어려운 삶이었을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고, 살아내었고, 견뎌내었다.

심지어는 그것을 딛고 일어서려 노력했고

평생을 불안과 불행 속에 내던져져 왔지만

그 속에서 옳은 길을 찾고,

끊임없이 성장하려고 노력했고,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상담사는 말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사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정말 어려운 일을 해내었고 해내고 있는거라고.


나는 사실 이렇게까지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 나가는데

왜 나는 늘 뒤쳐질까.

남들은 좋은 학교에 들어갔는데

왜 나는 이런 학교에...

남들은 좋은 직장에 들어갔는데

역시 내가 그렇지...

난 이거밖에 안되는구나

생각했지 내가 처한 환경 안에서

각고의 노력끝에 이루어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상담사의 말을 통해 생각해보니

그래, 나 참 기특하구나 싶었다.

무언가를 이루어낸게 문제가 아니라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속에서도 온전한 정신을 붙들고 살아왔다는 것 자체로도 나는 대단한 일을 해내었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고

나 역시 아프지만,

아픈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했다.


당시엔 너무 어렸기에, 무지했기에 깨닫지 못했는데

상담을 통해 문득 내가 PTSD 환자였음을 깨달았다.

한번도 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삶을 살며 늘 그것에 사로잡혀 있었고

침습적인 생각에 힘들었고

만성 불안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제서야 돌아보니

그와 동시에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하고 있었구나 싶다.

아픔을 발판 삼아 나를 들여다 보았고

아픔을 발판 삼아 아픈 이들을 돌보았다.

아픔을 발판 삼아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여전히 그 일로부터 내가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진실도, 해답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더이상의 진실을, 해답을 찾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떠안기로 했다.

인생에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을 겪었고,

하지만 그걸 통해 성장했으니..


다만 어린 시절의 내가 참 가엽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네가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구나.

네가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구나..

억울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아동기가 시작부터 완전히 꼬여버려 인생 전체를 통으로 날려버린 기분도 든다.

누군 안정적인 유년기로 평탄한 삶을 살아왔는데, 나는 외상이라 부를만큼 큰 아픔을, 아주 어린 시절 겪었고 그것으로 인해 평생을 불안에 떨며 살았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적대감으로, 비행으로, 좋지 못한 학교와 직장으로 이어졌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는 억울함..





그래도 꽤 잘 살아왔다.


상담사는 내게 강강약약의 사람이라고 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라고..

나 역시 나를 한없이 강하다가도 한없이 약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나의 모순적인 강함과 약함 사이에서 늘 이해가지 않던 부분이 마치 퍼즐조각이 끼워 맞춰진것처럼 이해가 갔다.

외상으로 인해 나는 강해져야만 했고, 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또 외상으로 인해 나는 한없이 불안하고 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나는 강함 이면에 한없이 약한 나를 품고서 모순적인 모습으로 살아왔던것 같다.


그냥 어린 나에게 대견하다 말해주고 싶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어 주었고,

잘 살아주었고, 잘 버텨주었다.

네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어.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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