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면류관을 쓴 효녀

by 김수빈


학부에서 상담공부를 하며 늘 궁금했던 점이 하나 있었다.

사랑받지 못한 자식이 효녀가 되는 이유,

늘 불행한 아동기를 보냈다고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아

서적도 찾아보고, 교수님께 질문도 드려보았지만

여기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아빠와

신경질적이고 거부적이고 예민한 엄마 사이에서 자랐기에

아동기가 어땠냐 물으면 늘 '불행'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아빠를 품고, 엄마를 품어왔다.


아빠에게 수천만원을 들여 치아를 해주기도 하고,

부모님을 해외여행에 모시고 다니고,

명품 선물을 해마다 해드리는 등

과도할 정도의 효행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더 해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상담공부를 시작하고서,

원가족과의 미분화에 대해 알게 되고

부모님의 그늘로부터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채 그들을 품고 있었다.


30대 중반이 되니 생일선물로 건강식품이 많이 들어왔다.

나도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니 내가 다 먹어도 되지만

역시 나는 부모님을 먼저 떠올리며 전화를 드렸다.

영양제가 들어왔는데, 엄마 먹을래?

홍삼이 들어왔는데, 아빠 먹을래?


그렇게 원망하고 미워한다던 부모임에도

왜 나는 또 엄마, 아빠를 먼저 챙기며

효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담사는 주변에서 효녀라고 인정해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나는 효녀라는 말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효행을 하고 있을지라도, 마음 속에 그들을 존중하고 곤경해서 하는 효라기보다는

의무감에, 미움과 원망이 기저에 가득한 상태에서 하는 효였기에

진정한 효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효녀라는 칭찬을 들어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 뿐,

그것에 큰 의미를 두거나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고 했다.


사실 상담사는 지난 상담에서 부모에게 과도한 효를 실천하고 있는 내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고 거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꼭 내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예수님이 쓰고 계신 가시면류관,

멀리서 보면 왕관을 쓰고 있는 것 처럼 멋있게 보이지만,

정작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는 본인은 굉장히 고통스럽다고.


상담사는 내가 부모에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 감정들이 전혀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1회기 상담에서 분명 나는 엄마에 대해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거부적인 사람이다 라고 표현했으면서,

5회기인 현재에는 엄마를

나를 위해서 대신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고 희생하는 사람이지만

먹고 살고 바빴기에, 신경질적일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1회기 상담만 했다면 상담사는 나의 엄마는 그저 신경질적인 사람이구나 라는 인생만 받았을 것이지만,

현재의 나의 표현으로는 그때의 묘사와 전혀 다른 엄마인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1회기때 표현한 엄마는 어린 시절 느꼈던 엄마의 모습이고,

현재는 성인이 되어 엄마의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에

표현의 차이가 있다고 했지만

상담사는 그것의 통합이 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통합이 이루어졌을 수 있지만

통합이란 것이 통합되었다가도 흩어지고,

또 통합되었다가도 흩어질 수 있기에

어떠한 시점에서는 통합을 이루었을지라도

현재에는 또 다시 통합되지 못하고

부모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에 스스로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조심스레 나는 반동형성의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것 같다고 했다.


반동형성, 내가 가진 감정과 사고, 욕구이면서

나의 감정이라 받아들이면 고통스러워 전혀 반대의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것.


나는 평소 투사의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반동형성을 사용한다 것은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스스로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부모에게 미워하고 원망스러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그 반대되는 효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셨다.


오히려 더 착하게,

오히려 더 사이좋게,

오히려 더 신경쓰며

효녀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면 내가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감정과 과거와, 사실은 덮어둘 수 있기에.

그것들을 모두 부정할 수 있기에.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모에게 더 잘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고.


상담사는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나는 아빠가 그땐 뭘 몰랐으니까, 아빠도 미성숙했으니까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감정이 남지는 않았다.

그냥 다 용서하고 아빠를 포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상담사는 내게 다시 한번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당시 미성숙한건 아빠가 아니라 나였음을.

아빠는 성인이었고, 미성숙할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무책임했고

나는 당시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뭘 몰라서,

아이라서 미성숙했을 나이였다고.


그리고 여전히 아빠가 무지하고 무능하기에

60대인 아빠가 지금도 미성숙하다고 느껴지기에

아빠에게 원망과 동시에 측은함을 느낀다는 나의 말에

상담사는 지금 누가 누굴 측은하게 느끼냐고 물었다.

무책임했던 아빠가 나빴던 거고,

측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아빠가 아닌,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나를,

아빠가 나를 측은하게 여겨야 함에도

나는 아빠를 측은하게 여기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가씨때부터 고아원이나 소년소녀 가장 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아가씨때도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다녔고,

소년소녀 가장 아이들에게 정기후원을 하기도 하는 등

부모에게 국한된 측은지심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향한 측은지심이 있었다.


상담사는 내게 그런 아이들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나는 부모는 너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인데,

무책임하고 무능한 부모를 만나서 너희가 고생하는 구나, 불쌍하다, 돕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상담사는 내가 선택한 부모가 아닌데 고통받고 있는 불쌍한 아이들이 누구냐 물으며

그 아이들이자, 바로 나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아이들을 통해서도 어린 시절의 나를 투영하고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부모는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건데,

미성숙한 부모를 만났고,

그런 부모로부터 엄청난 상처를 받고 살아왔다.

그러한 내가 고아원의 아이들을, 소년소녀 가장 아이들을 보며

늘 나의 내면의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측은지심을 갖고, 그들을 도우려 했다는 것이다.


3년전 상담으로 나는 과거의 부모님을 다 포용하고, 다 품어내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로부터 분화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동기에 그들로부터 받았던 영향력을

나의 온 삶에 있어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또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에게 가지는 많은 감정들 속에서

그 감정들을 통합시키지 못했고,

여전히 가시면류관을 쓰고서 고통스럽게 그들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가시면류관을 내려놓고

고통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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