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는 나에 대해 별다른 정보가 없었던,
상담의 1회기부터 내게 모순적인 사람이라 이야기 했다.
누군가가 들었다면 무례하다, 기분 나빴겠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살면서 수없이 느껴본 모순인지라 반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모순의 원인에 대해 늘 갈증이 있었던 터라 그것이 화두로 떠오르자 오히려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상담사 역시 그에 대한 원인은 알지 못하는것 같았다.
모든 내담자는 이미 해답을 가지고 있다.
그저 그것을 찾아나가지 못했을 뿐이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
상담사가 길을 찾는 안내자 역할을 할 뿐, 해답은 이미 내담자의 손에 꼭 쥐어져 상담장면에 방문하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상담사의 해답이 아닌,
상담사의 안내를 따라 밟아 나가다보니 나의 모순에 대해 해답을 찾은 것 같다.
나는 인지가 주기능인 사람임에도 공감을 원하고 감정이 어루만져지길 원한다.
상담사가 내게 상담을 통해 무엇을 얻길 바라는지 물었을때, 나는 공감보다는 해결책이나 정답을 원한다고 말했고 상담사는 내 요구에 따라 공감보다는 직격탄을 날려댔지만 큰 거부감을 느끼며 저항을 일으켰다.
MMPI 심리검사에서도 반사회성과 우울이 높게 나타났다.
극과 극의 증상인 반사회적인 모습과 우울이라니..
거기다 나는 인지가 주기능이래놓고는, 마음이 아픈 우울이란다.
상담사는 내가 인지를 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감정 역시 매만져주기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상담사는 내게 스스로 자각하는 내 모습에 대해 물었고, 나는 한없이 강하면서 한없이 약한 사람이라 말했다.
어느날 친하지 않은 지인이 내게 이야기했다.
너는 직설적이라 친해지고 싶지 않았어, 헌데 오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냥 나를 완전히 수용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라고.
나는 굉장히 직설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타인의 기분 역시 살피며 눈치를 보기도 한다.
또 내게 잘 맞는 이론은 인지행동치료라 말하면서, 마음 속에는 늘 로저스를 품고 있다.
머리로 판단하면서 마음으로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 수용을 좇는다.
남이 잘되는 꼴을 보면 배알이 꼴렸으면서 (물론 과거에) 또 힘든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타인의 행복을 시샘하면서도, 타인의 불행은 또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해 꾸준한 봉사활동을 실천하는 아이러니함을 보였다.
우월감에 젖어 살면서, 기저에는 열등감이 가득했고
강하고 쎈 모습을 표출하면서도, 속에는 겁많고 소심한 아이가 들어앉아 있었다.
말그대로 모순덩어리였다.
한번은 이러한 내 모순을 내가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한달여의 시간동안 자아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진적도 있었다.
진정한 내 모습이 무엇인지도차 알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세고, 자존심 강하고, 직설적인 사람인데
내가 '느끼고' 있는 나는 약하고, 겁많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나는 누구지?
뭐가 진정한 내 모습인거지?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머리가 터져버릴 만큼 생각을 거듭해보았지만 한달의 시간동안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채 그렇게 흐지부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상담사는 다시 내게 이야기하고 있다.
너에게 수많은 모순이 보여 라고.
그리고 나의 내면아이를 마주함으로서 비로소 해답을 찾았다.
결국은 이것도, 저것도 다 진정한 나였음을.
고통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키워낸 강인한 나와, 고통으로 인해 상처입은 나약한 나.
상처로 인해 세상에 적대감과 불신을 가졌지만, 그것의 원형은 애정과 관심이었음을.
그저 너무나 양극단의 것들이라 그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 나인건지 혼란을 경험해왔지만 내면의 어린아이를 마주하고나니 결국은 모두가 나였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MBTI 붐이 일었었다.
MBTI 창시자인 융이 MBTI를 만든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의 성격의 주기능 뿐 아니라, 열등기능을 알고 그 둘을 통합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라고.
나는 ENTJ(혹은 ESTJ)의 주기능이 나오지만, 내 안에 ISFP는 내게서 배제되어, 없는 성격이 아니라 내 안의 열등한 성격인 것이다.
그러니 나의 드러난 성격과, 그리고 기저의 열등한 성격을 모두 통합시켜 자기를 실현하라고 융은 이야기 하는데 상담공부를 3년간하며 융의 이론을 수없이 많이 공부해왔지만, 이제서야 진정한 의미를 절실히 깨닫는다.
나는 ENTJ의 성격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ENTJ가 강하게 드러났을 뿐, ISFP의 극단의 다른 모습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
종종 양극단의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결국은 둘 다 나의 모습이다.
어쩌면 내 안의 내면아이가 ISFP일지 모르겠다.
모순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면아이를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더 가벼워진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꼭 내가 이러한 사람이야 라고 굳이 정의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냥.. 나는 나다.
나는 이러한 나도 될 수 있고,
저러한 나도 될 수 있는,
모순덩어리지만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다.
이제야 있는 그대로의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