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믿지 못하고 계시는군요.

by 김수빈


나는 평소 아이의 사회성에 주의가 편향되어 있었다.
3~4세쯤엔 또래를 거부했었고,
7세인 아직까지도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또 유치원의 옆반 친구들이나 미술학원의 언니가 친구들과 놀고 있을때
아이는 같이 놀고는 싶으나 쉽게 끼지 못해 주위를 배회하기만 하다 들어오기도 했다.
또 옆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섞여 놀던 상황에서도
친구들이 서로 손을 잡으면
본인도 손을 같이 잡고 가고 싶은데
쉽게 타인의 손을 잡지 못해 뻘쭘해하며 내게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아도 아무도 엄마를 안찾는데
혼자서 엄마를 30번은 부르곤 했다.
또 그네를 타려고 가서 자리를 잡았다가도
누군가가 와서 빼앗아가면 그대로 뺏겨버리고
공놀이를 하다가도 친구가 와서 휙 가져가버리면
속상하지만 그대로 포기해버리고 마는 아이였다.

친구들한테 손잡고 싶은데 왜 못잡았어? 라고 물으면
아이는 거절당할까봐, 혹은 타인이 싫어할까봐 라는 대답을 하곤 했고
왜 양보했어? 라고 물으면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채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이러한 무수히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나는 아이의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꼈고
사회성에 대한 걱정은 지금껏 수도없이 많이 해왔던것 같다.

친구들에게 자기주장을 잘 못하고,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놀이에 어떻게 끼여야 하는건지,
어떻게 하면 친구들이 좋아할지 모르고,
또 타인의 반응을 의식하고,
그렇다고 타인에게 맞추려하기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불편해서
금세 놀이를 포기하고 가버리는,
그런 아이라 생각했기에
사회성에 촛점맞춰 아이를 바라봤다.

그럴때마다 늘 불안이 올라왔고
나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인지로서 마음을 다잡곤 했다.

예민한 아이라 그래,
기질이니까 어쩔 수 없어,
아이만의 방식대로 자라고 있는거야,
아이를 믿어주자,

머리로 수도없이 되새기며 불안을 가라앉히곤 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이 아니었기에
그것은 그러한 상황이 맞닥뜨려지면
다시금 나의 불안과 의심을 자극했고,
계속해서 아이의 사회성에 주의를 편향하게 만들곤 했다.

상담사는 내게 이야기했다.
"아이를 믿지 못하고 계시군요."

나는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다.
평소엔 안그러다가 그런 상황에 놓이면 마음이 크게 동요한다고.
그랬다. 결국은 그것이 불신이었다.

나는 매일 아이를 신뢰하는 척 하면서
사회적인 상황이 다가오는 순간이면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아이의 사회성에 초점맞추어 지켜보곤 했다.
일단 내가 먼저 긴장과 불안에 사로잡혀
아이를 바라보곤 했다.

오늘은 나를 얼마나 부를까?
오늘도 못 어울리고 배회하는건 아닐까?

아이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함께 간 아이엄마들에게 나의 불안을 토로하곤 했다.
"어휴, 쟤는 지금 나를 몇번을 부르는거야"
"벌써 10번도 넘게 날 찾고 있잖아"
"봐, 또 못다가가서 배회하고 있네"
아이의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에 나는 매번 답답해 했고
아이에게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충분히 느꼈으리라.

그렇게 아이가 나가노는 순간에 나 역시 굉장히
예민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성이 문제이니 사회적인 상황에 계속해서 노출시켜
아이의 사회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러한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계속해서 노출됨으로써
나의 불안은 더욱 과도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놀이시간을 만들어 주기위해
하원 후 학원도 안보내고 놀이터로 뺑뺑이 돌리고
나도 수업이 있어 시간이 촉박한데도
아다리가 맞아 아이가 잘놀때면
수업시간을 여유있게 준비하기보단
촉박하게 시간을 채우고 들어와
아이 목욕은 아이아빠에게 맡겨버리곤 했다.
내게 있어 아이의 사회성은
만사 재껴놓고서 풀어야할 과제였기에
늘 사회적인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아이가 4살쯤, 또래거부가 있어 상담센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나는 사회성의 문제라 치부하고 있었지만
상담사로부터 의외의 말을 들었다.
"사회성이 안좋은 것이 아니라, 아이의 기질이 굉장히 예민해서
예측되지 않는 불확실한 타인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낍니다.
어른들의 경우, 상식적인 사람들이고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한 사람들이기에
어른들이 다가오는 것은 괜찮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한 존재인 아이들의 경우
이 아이에게는 예측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불안이 존재합니다.
또래아이가 좋아서 아이에게 달려올때, 상대는 좋은 의도로 오는 것이지만
이 아이에게는 200키로 시속의 차량이 달려오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한 공기의 결마저도 하나하나 느끼는 예민한 아이입니다."

순간 내 머릿속엔 정말
롸????
라는 생각뿐이었다.
얘가 예민하다고????
나는 내 아이가 4살때까지 예민한 기질인지도 모르고 키웠다.
첫 애였으니까.
다른 애는 얼마나 잘먹고 잘자고 잘싸는지 나는 몰랐으니까.
그냥 첫애니까 비교대상이 없어 모든 애는 이런줄 알고 키웠다.

상담사는 내게 물었다.
신생아시절부터 잘자고 잘먹고 규칙적인 생체리듬과 생활패턴이 있었느냐고.
아니었다.
밤잠은 늘 또래보다 1~2시간씩 덜 잤고
낮잠은 바닥에서 재워본적이 없을 정도로 등센서가 심했다.
알레르망 이불의 바스락하는 소리에도
눈을 번쩍 뜨는 아이였고
밥솥소리에 놀라서 울어대는 청각마저 예민한 아이였다.
규칙적이지 못해 늘 아이의 식사, 잠때문에
외출 시간을 어찌 맞춰야 할지 몰랐고
철저하게 계획적인 내게는 아이의 예측 불가능함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와 우울을 심하게 앓기도 했다.
게다가 신생아시절부터 주정서가 짜증이었던 아이는
눕혀놔도 짜증, 엎어놔도 짜증, 안아줘도 짜증, 안고 둥가둥가해줘도 짜증,
내가 무얼 해줘도 징징대는 짜증을 자주 보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선사하곤 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무서웠다.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랐다.
내가 무얼해도 성에 차지 않는 아이는
내내 울음과 짜증을 토해냈으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아이가 예민한 아이인줄 몰랐다.
어쩌면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이럴거야, 내 아이는 순해,
자기암시처럼 나는 아이의 예민함을 부정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상담사는 예민한 아이라 이야기했고
예민한 특성때문에
불안정 애착이나 사회성 문제 처럼 보였을 수 있다고 했다.



며칠전 나는 기질검사를 했다.
위험회피가 굉장히 낮고, 자극추구가 높은 사람이었다.

아이도 예민하고, 나도 예민하기때문에
나는 아이를 잘 이해해주는 엄마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질검사를 통해 나온 결과는 아이와 상반되는 결과였다.
물론 아이의 검사를 해보진 않았지만
아이는 회피가 굉장히 높은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불안한 상황이 될 것 같으면 그 상황을 회피해 버리곤 했다.

타인이 좋아서 달려오는 상황에서 아이는 불안요소인 타인을 회피해버렸다.
그네를 맡았지만, 타인이 와서 빼앗아 버리자 말한마디 하지 못한채 회피해버렸다.
공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타인이 공을 빼앗아 가자 역시 회피해버렸다.

아이의 기질은 회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기질은 회피와는 정반대 기질이었다.

그러한 나는 아이의 회피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예민함과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 예민함과 불안감에 부딪히는 사람이었다.
회피하지 않고 그 불안을 돌파해버리는 사람이었다.
불안에 대비하기 위한 무기를 강하게 만들고
철저하게 계획해 놓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맞닥뜨리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또래와 놀고 싶지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가 이해가 안갔다.
친구의 손을 잡고 싶지만 거절이 겁나 시도하지 못하는 아이가 이해가 안갔다.
물건을 빼앗기고도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가 이해가 안갔다.

나였으면 "야 이 새끼야!!!" 난리가 났을 상황이었을텐데.
나였으면 별 생각없이 다가가 덥석 손을 잡아버렸을텐데.
나였으면 적극적으로 다가가 놀이를 리드했을텐데.

어린시절의 나와는 너무나 다른 상극의 아이였다.
그렇기에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문제처럼 느껴졌던 것이었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아이가 전혀 사회성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사회성을 충분히 장착하고 있는 듯해보이고
오히려 너무나 영리한 아이라
사회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조절할 줄 아는
사회성과 영리함을 장착한 아이인것 같다 했다.
오히려 문제될것 전혀 없는 것에
엄마가 문제의 색안경을 끼고서
문제, 문제, 문제, 문제 라고 색을 입히고 있었다.


내 기질이 그러하지 못하니,
너무나 상이한 아이의 기질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타인의 감정을 살필 줄 아는 아이였다.
타인에게 덥석 손을 잡았을때 타인이 불편해할까 걱정할 줄 아는 아이였다.
불확실한 낯선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친해진 친구들과는 자신의 색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놀 줄 아는 아이였다.

아이는 기본적인 사회성을 잘 장착하고 있음에도
엄마인 나는 계속해서 아이를 믿지 못했다.
아직 7세이고, 그것을 배워 나가는 나이임에도
다른 아이들은 이미 다 배우고 다 끝낸것 같은데
내 아이만 아직도 배워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극추구가 강하고 외향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다보니
아이 역시 그러한 나의 틀에 맞추려 한 것 같았다.
나처럼 외향적이고,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아이만의 기질이 있고
아이만의 방식이 존재함에도
'내 방식이 옳으니 나한테 따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상담사는 얘기했다.
상담소에 찾는 엄마들 중
굉장히 외향적인 아이들의 경우
ADHD를 의심하고 치료하길 원해 찾아온다고.
외향적이라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내향적이거나 소극적인 아이라고 무조건 나쁠 것도 없다고,


이제 아이의 기질을 인정하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더이상 문제로 보지 않기로 했다.
물론 또 어떻게 마음 속에 파도가 쳐올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믿어보려 노력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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