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점을 잃어버린걸까.

by 김수빈


요즘의 나는 다시금 혼란에 사로잡혀 있었다.
최근 통합을 이루었다 했지만
그와 함께 나의 강점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내게 밝은 모습의 내가 좋다 했다.

나는 종종 노홍철이 떠오를 만큼 방방 뛰기도 하고,
말도 많고, 나대는 사람이었다.
굉장히 밝아서 사람을 끌어 모으고,
모르는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는 친화력을 보이곤 했다.

나의 강점이 밝음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담공부를 시작하고서
최근의 나는 내향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격하게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외향형과 내향형의 차이 중 하나는
타인의 기분을 어느 정도 고려하느냐의 차이도 있지 않을까.

파워 외향형이던 시절의 나는
타인의 기분보다도 나의 기분과 욕구, 충동이 우선이었기에
어떠한 언행을 할때 타인의 기분은 크게 고려치 않았다.
전혀 안하진 않았겠지만,
그것이 나의 피곤함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말을 툭툭 내뱉어
자칫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거나 한적은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던것 같다.
타인에게 기빨리고 오지 않고
오히려 타인의 기를 죄다 빨아먹고 오는 듯하게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기고 좋아했다.

하지만 상담공부를 시작하고서
나의 행동이 자칫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음을 알아차렸고,
사실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함은 알고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던 행동들이
이제는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며
또 공감이 생기게 되면서
나는 타인을 대하는 나의 행동에
극심한 주의를 기울이곤 했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어떠한 말을 건낼때
나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지
염려를 하면서 이야기하게 되니
타인을 만나면 기를 쭉 빨리고 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학창시절 친구와의 만남에서도
고작 4시간을 있었으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쓰러질듯한 피곤함을 느꼈다.

아이 유치원 엄마들과 이야기를 할때도
나는 피곤함을 자주 느끼곤 했다.

파워 외향형이던 나는 내향적 성향들이 나타남에 따라
나의 강점이던 밝음을 일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뒷담화를 하지 않기 위해,
또 타인의 말을 옮기지 않기 위해,
나는 대화를 할때 엄청나게 집중을 하곤 했다.
타인의 기분을 고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게 있어 강력한 존재인 원초아의 욕구를
지연시키거나 누르기 위해
나는 에너지가 탈탈 소진되곤 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나와 대화하면
다들 꼭 한마디씩 하곤 했다.
"너 변했어."
"네가 이렇게 됐다고?"
"네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나의 강점인 밝음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대화는 철학적인 사색으로 이어지곤 했다.
최근들어 사귄 지인들과의 대화는 성숙한 대화로 이러지곤 했다.
그렇기에 학창시절 친구들은 변했어!! 라는 피드백을,
최근 사귄 지인들은 나를 성숙하고, 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보곤 했다.

나 역시 이러한 변화가 마냥 편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최근들어 나는 혼란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모르는게 약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던 때,
나의 반사회성이 문제라는것을 모를 때,
내가 타인에게 공감하지 않던 때,
사회는 나와 타인이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마냥 칠렐레 팔렐레하며
또 해맑게, 밝게,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살아가고 있을텐데.
라는 생각에서 회의감이 들었다.

이전의 나는 말그대로 개썅마이웨이였다.
소위 지랄을 해서 타인이 기분이 나쁘던 말던 네버 마인드였다.
타인에 해가 되든 말든 내가 좋으면 그만 이었다.
내가 우선이었고, 내 이득만 챙기면 되었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었다.
정말 개썅마이웨이였다.

자유에 대한 정의가 다들 다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기분이 좋으면 내 삘대로 술집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고
술집을 춤판으로 바꾸어 버리기도 했었다.
급작스레 노래경연대회, 춤경연대회가 있으면
잘하진 못해도 무작정 달려나가던 사람이었다.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 사이에 난입해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웃기면 웃기는대로 큰소리로 깔깔대고,
슬프면 슬픈대로 큰소리로 엉엉대는,
어쩌면 타인에게 굉장히 해가 될 수도 있는 행동임에도,
타인의 눈은 신경쓰지 않고
정말 내 멋대로 행동하던 개썅마이웨이였다.

어쩌면 그때의 내가 자유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당시 나는 '내가 낸데' 였으니까.
유치하고, 미성숙하고, 좀 병신같아도
스스로는 그걸 인지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모르는게 약인채로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살았다면
어쩌면 혼란도 없이,
성장은 없겠지만,
편안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다시금 혼란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그때의 자유는 표면상의 자유일지도 모른다.
진짜 내면아이는 억압한채,
겉으로 드러나는 일차적 감정들에 반응했기에
그것이 피상적인 자유였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행의 제약이 걸려있지 않았다는 것이
내게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상담공부 이후 느끼는 이 갇혀버린 갑갑함은
내면아이를 자유하게 만듦으로서
외면아이는 가두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미 깨달아 버린 이상
나는 다시 미성숙하던 때로 돌아갈 순 없다.

이것이 성장해 가는 과정 중 하나이겠지만
그때의 자유가 그리울때가 종종 있다.

밝음이 강점이었던 나는
또 어디로 사라진걸까.
그 밝음을 이끌던 것이 원초아였는데
이 원초아를 통제하고 지연시키는 것이
현재의 과업이라니.
요즘은 나의 강점이 퇴색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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