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시댁모임이 있었다.
시댁모임에서 남편은 신이나서 내게 조롱섞인 말을 던지곤 했다.
평소에는 그러지 않은데 꼭 시댁에 가면
신나서 나를 깎아 내리는 남편에게 화가 났지만
바로 발끈해서 들이받았을 평소와는 달리 조용히 곱씹어 보았다.
며칠의 생각을 거쳐 나온 결론은
나 역시 그러하니까, 남편도 같은 반응을 습득했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시댁에 가서 남편을 비난하고 조롱하니까
남편 역시 방어 혹은 공격의 형태로 같은 반응을 보였겠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시댁에 가면 남편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형태의 말을 많이 던지곤 했다.
사실 이것이 비난과 조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비난과 조롱을 일삼는지도 모르고 취하던 행동이었다.
남편이 술 마시는걸 극도로 싫어하시는 어머님께
나는 만날때마다 남편이 얼마나 자주 술을 마시니,
얼마나 많이 마시니 미주알고주알 고자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머님은 늘 화가 나셨고,
남편에게 화를 내기도, 잔소리를 하기도 하셨다.
그러한 어머님의 잔소리에 같이 빈정이 상해버리는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어머님이 남편에게만 화가 나는건 아니셨다.
내게 말씀은 안하셨지만
비언어적으로 느껴지는 나에 대한 화도 있으셨던것 같다.
이걸 매번 굳이 전달해서 어머님 속을 긁어 놓으니 말이다.
매번 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눈치 빠르게 캐치하면서도
나는 이것을 포기하지 못했다.
처음엔 단순히 나의 잔소리로 통제되지 않는 남편을,
어머님이 더한 잔소리를 더해주는 것이 좋은 줄 알았다.
혹은 어머님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현받음으로써 내 생각이 옳음을 증명해주기에
그것을 원하는 건 줄 알았다.
뭐, 일부는 맞지만 또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얼마전 싸이월드가 오픈되면서 학창시절 친구들은
추억에 젖어 예전 사진을 본인의 SNS에 대거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사진도 A친구의 SNS에 올라가며
흑역사를 타의로 오픈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추억이고 웃길 뿐, 내게 그 외의 다른 감정을 불러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SNS를 확인한 다른 B친구가 내게 연락이 왔다.
너 기분 괜찮냐고,
SNS에 사진을 개제한 그 친구는 너무나 몰상식한 행동을 했다고,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무례한 행동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기에
아무렇지 않다 전했다.
하지만 B친구가 SNS에 사진을 개제한 A친구를 욕하기 시작하자
나는 갑자기 에너지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전혀 아무렇지 않음에도
비난까지는 아니었지만
다소 조롱섞인 이야기를 했던것 같다.
A친구를 감싸주기보다
그러한 비난을 듣는게 재미있었다.
나는 전혀 그 A친구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그저 남의 비난을 듣는것이 흥분되기도 하고 쾌락을 느끼기도 했다.
상담공부를 하기 전,
나는 타인과의 소통 방법으로 뒷담화를 자주 사용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처음보는 타인과도 쉽게 친해지고,
친화력이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 친화력을 이끌어내는 소통 방법은
바로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고, 또 뒷담화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흔히들 타인의 이야기에, 뒷담화에
쉽게 호기심을 가졌고 또 흥분을 느끼는듯 했다.
낯선 이와 이야기를 나눌 공통 주제가 잘 없기에
사람들은 낯을 가리기도,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나는 타인의 말을 하면서, 뒷담화를 하면서
낯선 이와도 쉽게 친해졌다.
원래 뒷담화를 나누고나면 무언가 끈끈한 것으로 연결된 듯한
공감대와 결속력을 느끼기에 딱 좋다.
물론, 당시에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했던 행동은 아니었지만.
타인의 말을 전하고, 뒷담화를 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수많은 소통 방식 중 하나였다.
물론 그것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여지가 충분한 방식이었고,
또 뒷담화를 하면서도 불안했지만
나는 뒷담화의 재미와 통쾌함을 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뒷담화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었기에 앞담화도 대놓고 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뒷담화를 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고서도
내게 따지지 못한 이유는,
이미 그들 앞에서 충분히 앞담화를 했기에.
또한 따지고 든다 한들, 나는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아이였기에
아이들은 그것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다고들 했다.
타인의 말을 전달하고,
또 뒷담화를 하는 것은
내게 너무나 재미있는 흥분을 일으키는 거리였다.
최근 싸이월드가 오픈됨에 따라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의 연락이
급작스레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학창시절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또 추억의 인물들이 현재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서로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뒷담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추억의 친구들이
현재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많은 뒷담화를 쏟아내었다.
사실 상담공부를 하며 나는 뒷담화에 대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더이상 뒷담화를 하지 않던 상태였다.
아니 오히려 아이 유치원의 다른 학부모가
내게 와서 다른 타인에 대해 욕을 할때면
듣기 거북하고, 눈쌀 찌푸려지고, 피곤해지기까지 했었는데
예전의 학창시절 친구를 만나고 나니
그러한 뒷담화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뒷담화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흥분되고 재미있고 쾌락을 느끼는 기분을
나는 숨길 수 없었다.
새로 사귄 인물들과는 뒷담화를 더이상 주고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미성숙한 행동임을 알고 나는 굉장히 경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예전 관계를 맺었던 지인들을 만날때면
나는 예전의 의사소통 방식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SNS에 친구가 개제한 사진을 보고 상식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했던 친구에게나,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옛 친구들의 소식을 전하며 뒷담화를 늘어놓는 친구에게나,
혹은 술마시는 남편에게 비난을 하는 시댁에 갈때면
옛 의사소통 방식인 타인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혹은 이간질을 일삼는 모습들이 나타나곤 했다.
나는 분명 상담공부를 하며 성숙해 졌었는데,
더이상 타인의 뒷담화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옛 지인들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러한 나의 모습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예전처럼 막무가내 뒷담화를 즐기진 않았지만,
타인을 욕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흥분되고 쾌락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상담사는 내게 원초아가 굉장히 강하다고 했다.
본능과 욕구가 굉장히 강해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원초아는 결국 초자아와 연결된다 했다.
상담 1회기에서 나는
내게 온전한 성인의 모습을 보여줄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아빠는 너무나 방임적이었고,
또 엄마는 너무나 권위주의적이었다.
엄마는 도덕관념이 굉장히 강하고,
오히려 타인들보다 굉장히 정직하고 또 성실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빠에게 있어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엄마가 타인의 이야기를 뒤에서 하는 모습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아빠때문에 힘든 엄마는
아빠를 향한 비난을 내게 쏟아내곤 하셨다.
아빠는 모자라는 사람이다.
아빠가 미친거 아니냐.
같은 아빠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무시하고 하대하는 발언을 쏟아냄으로써
아빠의 권위는 내게 있어 바닥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엄마도 너무 힘들어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엄마가 아빠 이외의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는 모습을
나는 살면서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에
나는 엄마가 굉장히 정직하고, 성숙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오히려 내가 뒷담화를 하면
엄마는 타인 편을 들곤 했다.
나의 뒷담화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엄마가 굉장히 성숙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아빠의 욕은 수도 없이 해오던 엄마였다.
그렇기에 상담사는 그러한 엄마의 모습을 내면화 시켰을
가설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 누구도 내게 의사소통 방법으로 뒷담화를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의사소통 방법 중 주된 것이 바로 뒷담화였고,
그렇다면 그것을 학습할 수 있는 곳은 가정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그러한 것을 보고 자랐기에
나는 초자아를 키울 수 없었을 것이라 한다.
그러한 모습을 학습하고 습득함으로서
타인과의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
뒷담화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한다.
뒷담화든, 앞담화든,
그것이 아니면 엄마, 아빠가
옳은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
앞에서 비난하든, 뒤에서 비난하든,
그들의 의사소통 방식은 비난과 조롱이었고
나는 그것을 학습하여 사회적 의사소통기술로서
발현했던 것이었다.
예전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만 예전 의사소통 방식이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타인을 향한 비난과 모욕이
내게 있어 재미와 쾌락을 불러 일으키는
원초아가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동화된 반응이라고 한다.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뒤로 하고
부적응적인, 역기능적인 과거의 의사소통 방식이
예전의 지인들을 만났을때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들.
상담사는 상담사에게 있어 상담사 모드로만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소진을 빨리 일으키는 일일 수 있다 했다.
때로는 상담사 모드에서 나와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도,
또 그러한 재미와 쾌락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
상담사로서 롱런하는 일 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자기성찰과 반성은 필요하다고.
타인을 향한 비난과 조롱을 성찰하고,
또 반성하고, 또 사과하고,
그러한 시간들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어떠한 의사소통을 하든,
그것이 먹히지 않는 이상은 그것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뒷담화나 타인의 말을 전하는 것이 부정적 상황을 가지고 올 것이라
충분히 예측되는 상황임에도 나는 이러한 의사소통을 계속해서 고수해왔다.
나의 열등감을 숨기고, 타인의 위에 서려는 우월감으로,
또 타인을 통제하기 위한 시도로서 선택했던 이러한 역기능적인 의사소통 방식들이
과연 타인의 위에서 군림할 수 있었던가,
타인의 통제를 이끌어 내었던가
생각해본다면 글쎄다.
상담사는 진정한 통제란
타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라 했다.
타인을 통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라 했다.
최근 나는 강렬한 나의 원초아의 욕구들을 자각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참아내는 인내가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고
원초아의 욕구가 올라올때면
자아에게 의식적으로 이것을 지연시켜보라,
이것을 다른 것으로 충족시켜 보라
의식적으로 통제를 유도하곤 한다.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들은
불확실함에 대한 인내력이 낮기 때문이라 하는데
결국은 나의 불안, 본능과 욕구, 또 뒷담화
모든 것들은 나의 인내력, 통제력 부족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역기능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버리고,
기능적이고 적응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가져봐야겠다.
엄마로부터 학습된 비난과 조롱의 방식을 버리고
원초아의 본능과 욕구를 통제하기도 하면서,
상담사로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을,
또 내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