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이다.
나는 피상적이다.
관계가 피상적이다.
라는 말은 자주 했지만 감정이 피상적임은 몰랐다.
인간관계를 할때 겉으로만 친한 피상적인 관계를 자주 유지해왔다.
의도적인건 아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의 관계패턴은 항상 그러했다.
피상적인 관계임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나의 감정 역시도 피상적임은 알지 못했다.
상담사는 나에게 상당히 많은 감정이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저의 그 많은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는 늘 가장 표면에 있는 감정만을 인지하고 느끼고 있다고 했다.
얼마전, 아이와 아이의 친구가 놀다가 나를 부르며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달라고 부탁을 했고
나는 열매를 따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높은 곳에 매달린 열매를 차마 딸 수가 없었다.
"아이고 나도 따주고 싶은데, 너무 높이 달려서 딸 수가 없다야"
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아이의 친구가 "그럼 우리 엄마는 당연히 못따겠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 친구와 아이친구의 엄마는 키가 상당히 작은 편이었고
아이 친구의 엄마는 아이의 작은 키를 걱정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그 말에 빵 터져서 너무 웃겨
당장 이 얘기를 전달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냥 '웃기다'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바로 근처에 있던 아이엄마에게 가서 이야기를 전달했다.
나는 어떠한 의도도 없이 그저 웃겨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미묘한 상대방의 감정 변화를 눈치챘고,
뒤늦게서야 아차! 싶었다.
상대는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기질인 나는 미묘한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웃긴 이야기일지라도
상대방에게는 약점일 수 있는데
그것을 나는 웃기다며 생각없이 바로 달려가 전달했다.
이런... 또 실수를 했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사과를 하기도 애매했다.
내가 사과를 하는 순간
그 사람의 작은 키가 극명하게 밝혀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찌저찌 흐지부지하게 넘어가버렸고
사과의 기회는 놓쳤다.
나는 웃긴 것을 참지 못한다.
타인들과 이야기를 할때 굉장히 잘 웃는 편이기도 하고
실제로 웃음이 더럽게 많다.
연극도 아니다.
그냥 진짜 졸라 웃긴거다.
아가씨때 직장 상사 이름이 성기왕이라는 분이 계셨다.
이제 막 입사한 동기들과 함께
직장상사의 자기 소개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 이름은 성기왕이다 라고 소개하는 순간
나의 웃음 버틈은 여지없이 터져버렸다.
다들 이 악물고 참고 있는데
병신같이 도저히 참지 못했다.
피식피식 대다가 결국 박장대소 해버렸고
얼마 후 나는 다른 부서로 좌천되고 말았다...;;;
어쨋든 이렇게 '웃긴'상황에서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웃긴거에 초점이 맞춰져 버린다.
다른 모든 것은 블라인드 처리 되어 버리고
그것에 꽂혀 상황이나 타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빵빵 터져버린다. (쓰면서도 참 병신같다고 생각함..)
한번은 직장에서 남사원에게 성희롱을 당한적도 있었다.
지나가며 엉덩이를 만진 남사원에게
성격상 참지 않고 바로 야!!! 라고 소리치며 직장을 발칵 뒤집어 엎어놨었다.
분노에 휩싸여 직장상사에게 바로 달려갔고
엉덩이를 만진 사건에 대해 보고를 했다.
분노로 씩씩대며 보고하는 와중
엉덩이라는 단어에 혼자 또 꽂혀서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닌, 심각한 상황에서
나는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
오히려 직장상사는 매우 심각해져 내 얘기를 경청하고 있는데
피해자인 내가 빵 터져 버린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나는 웃음포인트에 하나 꽂히면
그거에 휩싸여 버린다.
상담사는 분명 '웃기다'는 것의 기저에
여러가지 감정이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기다는
가장 표면에 있는 피상적인 감정만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반응을 해버린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러했다.
학창시절에도 나는 타인의 약점을 빌미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웃음거리를 자아내곤 했던것 같다.
사람들은 늘 빵빵터졌고
웃기다는 피드백을 정말 많이 들었다.
뭐, 피드백을 받으면서도 나는 몰랐다.
내가 웃긴 사람인가?
내가 웃긴가?
뭐가 웃기단거지??
그렇기에 웃기려는 의도로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타인을 웃기기 위해 한 말이기보다는
그냥 내가 졸라 웃긴 얘기를 한거다.
내가 웃겨서, 내가 즐거우려고,
어쨋든 나는 타인을 짓밟는 언행으로
타인들을 자주 웃겨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된 타인은
처음엔 함께 빵 터져 웃다가도
갑자기 정색을 하곤 했다.
"야, 내 이름 좀 팔지마. 나 팔면서 웃기지마."
?????????
의아했다.
내가 뒤에서 한 말도 아니고
너 앞에서 한 얘기잖아.
그리고 너도 터져서 웃었잖아.
또 내가 없는 말 한것도 아니고, 팩트잖아???
그렇게 쏘아붙이면 친구들은 할 말을 잃곤 했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의도도 없었으니,
그냥 그것이 팩트였으니 잘못될거 하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내 행동의 오점을 찾지 못했다.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고 나의 욕구를 지연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타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나의 웃음을 찾는 욕구의 그 기저의 또 다른 욕구들을 들여다 보았어야 했지만
그저 피상적인 가장 표면의 그 욕구만을 나는 느끼고 반응하고 있었다.
상담사는 내가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을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담공부를 하는 지금은 다르지만,
예전엔 그러했다.
타인의 감정이 내게 있어 중요할건 전혀 없었다.
알아도 달라질건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상담사는 말했다.
나는 I'm OK. You're not OK. 라고
내가 괜찮으면 타인의 감정은 어찌되었든 상관없었다.
내가 재미있으면 그만이었고,
내가 웃기면 그만이었다.
타인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웃음과 재미만 찾았다.
상담사는 나의 그러한 부분들이 부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했기에
내가 그것들을 버리지 못한것이라 말했다.
네? 이런 것에도 긍정이 존재하다뇨??
의아해하며 질문했고
상담사는 대답했다.
나의 직설적이고 빠르고 강한 반응들이
타인에게는 똑똑해보이고 리더쉽있어 보이고 강해보이기에
내가 타인들을 이끌어가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또 타인들을 웃기고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것 또한
타인들을 통제하는 통제욕구와 맞물린다고 했다.
이러한 나의 통제욕구와 웃기고 재미있는 것들이 결합되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기에
나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웃음과 재미를 찾고, 기저의 통제욕을 채우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내 놓았다.
생각해보니 그러했다.
며칠전, 아이의 친구가 아이에게 질문했다.
"너희 엄마는 화 안내? 우리 엄마는 뻑하면 화내는데. 너희 엄마는 화 한번 안낼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또 한번 재미있다는 감정을 느꼈고
그것을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지만
이걸 들을 그 엄마의 심정이 어떠할지를 생각하며 그 감정을 누르고 또 눌렀다.
그리고 며칠전 그 엄마와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나는 거기에서 그 말을 내뱉고 싶은 충동을 또 한번 느꼈지만
머릿속으로 "말하지마 말하지마 말하지마"를 계속해서 되뇌었고,
그러다보니 그 사람과의 대화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쓸데 없이 말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에너지만 다 소비하고 돌아왔다.
내가 그 말을 하고 싶은 욕구는 재미있다 였지만
상담을 받는 동안 생각해보니
기저에는 우월감이 깔려 있었던것 같다.
'너희 애는 이렇게 말하는 구나,
우리 애는 엄마가 타당한 경우에만 혼을 낸다고 이야기 하는데.
나는 아이에게 화를 잘 통제하는데.'
라는 우월감을 느낀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우월함을 상대에게 알리고 싶었던것 같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고,
상대의 기분을 고려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지로
그것을 계속해서 누르고 있었던것 같다.
이 우월감 역시 통제욕구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러한 우월감, 재미 모든 것이 통제욕구와 관련되어 있었다.
상담사는 웃긴 것에만 초점맞추지 않고
나의 기저의 욕구를 알아차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와 동시에
그것을 말했을때 느낄 타인의 감정,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나올 타인의 부정적 반응 등을
예상하고 그것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내 반응들은 대부분 굉장히 자동화되고 반사적인 반응들이었다.
깊이있게 생각하고 고려하지 않은, 굉장히 빠른 반응들.
남편은 반응이 느린 사람이다.
무언가 말을 했을때 바로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런 남편을 나는 답답하게 여겨
왜 대답은 안하냐고 재촉하고 소리치기도 한다.
남편은 '생각중이었다.'는 말을 내뱉곤 했고
그러한 남편의 침묵의 시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빠르고 급한 사람이었기에
모든 반응들은 반사적이었다.
가장 표면의 욕구와 감정만을 알아차리고
그 표면의 욕구에 해당하는 반응만을 빠르게 내놓는다.
그렇기에 상담사는 빠른 반사적인 반응이 아닌,
자극과, 그 자극에 해당하는 반응이 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 사이에 어떠한 room을 만들어 정보처리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보처리가 굉장히 빠르고 신속했다.
물론 그것에 대한 긍정적인 면은
앞서말한 타인들에게 똑똑하고 강하고 분명한 인상을 남기고,
그것은 타인을 이끌고 통제하는데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빠르게 정보처리를 거치는 바람에
기저의 진짜 욕구는 무시되고,
타인의 감정 역시 고려되지 못하고
표면의 피상적인 감정과 반응을 내뱉게 된다는 것이다.
상담을 하며 방향성이 잡혀가는것 같다.
자기성찰 기능이 활성화되어
모든 나의 행동을 제3자가 바라보듯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감정도, 나의 기저의 욕구도, 공감도
지금처럼 노력하다보면 얻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