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J엄마

by 김수빈

MBTI 구매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워크샵을 들었다.
학부에서 이미 들었던 내용이긴 하지만, 분석심리에 대해 배우며 아주 짧게 훑어보고 지나갔던 내용이라 워크샵의 내용이 훨씬 풍성하긴 했다.

지금껏 ENTJ라 알고 있었던 나의 성격유형은 공신력있는 검사를 통해 ESTJ로 결과가 바껴있었고, 나 역시도 ESTJ의 결과가 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ENTJ의 기능도 꽤나 가지고 있긴 하지만.)

워크샵에는 모두 90명 정도가 참석했고, 그 중 본인의 유형별로 소그룹으로 묶어 자기 유형에 대해 더욱 파고들어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졌고, ESTJ끼리의 모임에서 나온 내용들이 평소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었기에 큰 공감을 자아냈다.

직설적이고, 냉철하고, 판단적이고, 신속하고, 정확하고, 철두철미하고, 계획적이고, 체계적이고, 자기주장적이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근거에 기반한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합리적인 경우에만 의견을 수렴하고, 나와 다른 의견, 특히 비합리적이라 느껴질 경우에는 어떻게든 끝까지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편이고, 공감보다는 사실을 더 중시하고 등등...

그냥 나였다.

MBTI 워크샵을 들으며 ESTJ의 장점과 단점을 극명하게 인지하고 또 자기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것 같다.


워크샵 이후, 딸아이와 여러 사건이 있었다.
며칠전부터 말에 짜증이 묻어나고, 거칠게, 버릇없게 말하는 아이가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예를들면, 유치원을 어린이집이라고 잘못 말하는 말실수라도 할라치면 그냥 넘어가거나, 혹은 가볍게 유치원이라고 지적해도 될 법한 일을 "어린이집이 아니고 유.치.원.이.잖.아! 엄만 그것도 몰라?! 어떻게 그런것도 몰라?!"
말실수였다 하면 "아니 말실수를 왜 해? 어른이 돼서 그 정도도 제대로 말 못해?!"
"왜 그런 식으로 말하고 난리야???"
같은 매우 버르장머리없는 표현과 짜증, 무시와 비난의 말투를 보이기에 며칠전부터 가벼운 경고를 날렸었다.
"버릇없이 말하는거 그만."
"짜증내면서 말하는거 그만."
"니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 기분 나빠."
정도로 며칠을 단순 간결하게 지적하고 넘어가다 오늘에서야 빡이 쳤다.
사실 처음부터 빡이 친건 아니었다.
버르장머리에 대해 조금 강하게 제지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강하게 말을 하다보니 약간 내 말에 내가 감정이입이 되어 더 화가 치솟으려는 상황이 되었고, 어느정도 강도에서 그만 둘 수 있었던 일을 내가 내 말에 휩쓸려 (내 감정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나의 입이 었던 느낌) 강도가 조금 격해졌고,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너 내가 너한테 똑같이 기분나쁘게 말하니까 좋아?! 근데 넌 왜 남 기분 나쁘게 말하니? 니 마음이 중요한것처럼 내 마음도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 마음도 중요한거야. 니 마음이 나빠지는건 안되고 남 기분 나빠지는건 괜찮은거니? 그럼 왜 버르장머리없이 짜증내면서 말하니? 왜? 이유를 말해봐? 이유없어? 이유몰라? 말하기 싫어? 그럼 이유 생각날때까지 여기서 생각하고 있어. 난 갈테니. 지금 이게 니가 잘못한거니 내가 잘못한거니? 니 잘못이라면서 너는 왜 울고 있는데? 니가 뭘 잘했다고 우는데? 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

아이에게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었고, 7세 아이에게 옳고 그름에 대해서 근거를 내세우며 니가 '잘못' 했고 니가 시작하지 않았으면 난 혼내지 않았다는 '합리'를 주장하고 있었고, 내 주장을 강하게 계속해서 아이가 이해하고 인정할때까지 수용될때까지 계속해서 내 논리를 펼쳐대고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만 하자.
7세다.
얘가 뭘 알겠니.
내 마음 니 마음 구분도 힘든 앤데.
엄마가 편하고 다 받아줄거 같은 존재니 엄마에게 짜증도 낸 건데.
짜증내는 것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도 잘 모르는데.
내가 지금 뭘 하는거지?
그만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방식을 고수하며 니가 잘못되었음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핑계를 대가며 아이를 잡고 있었다.

아이는 본인도 모르는 감정과 이유에 대해 답을 내놓으라고 하니 무어라 답해야할지 몰라 당황해서 얼음이 된채 울기만 했고, 운다고 해결될건 없다는 생각에 답답해하며 아이를 채근하고 있었다.

그러고서 문득 뒤돌아보았을때, 무섭고 속상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졌을 아이의 감정이 뒤늦게사 떠올랐고, 아이를 안아주며 속상했냐 물었다.
(ESTJ가 감정이 아예 없는건 아니고, 일처리, 효율성, 빠른 처리가 우선이다 보니 일단 처리가 완료된 후 감정은 그때 보겠다. 라는 마인드라고 함. 그래서 일처리가 끝나고나면 주변에 남은 사람들이 없다는 우스갯소리....)
아이는 그제야 엉엉 소리내어 울며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했다.

아니다. 사랑하는 맘은 늘 존재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결코 변하지 않지만, 화가 튀어 나오면서 화때문에 사랑이 가려져서 너에게 순간 보이지 않았나보다. 라고 했지만 아이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작 7세 아이에게도 나의 ESTJ 정떨어지는 논리, 합리, 설득, 자기주장 등을 펼치고 있었다.
참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그리고 저녁, 아이는 매니큐어를 바르겠다고 한다. 맘같아서는 내가 다 발라주고 싶지만 어디서 보고 들은건 있어서는 아이에게 늘 스스로 해보게끔 경험을 굉장히 많이 제공하고는 있다. (늘 탐탁찮고 맘에 안들어 문제지만 속으론 꾹 참아내면서)

아이는 매니큐어를 바르기 시작했다.
처음 발라보는거라 매니큐어를 덜어내는 것부터, 매니큐어를 바르는 방향 등에서부터 무지하기에, 아무런 경험치도, 정보도 없기에 아이는 굉장히 서툴렀고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아이를 스스로 경험하게끔 지켜보지 못했다. 옆에서 잔소리란 잔소리를 어찌나 해대는지, 내가 들으면서도 나한테 질릴 것 같았다.
이럴거면 그냥 내가 다 하지. 괜히 시켜서는 애한테 잔소리 폭격 날리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다급해지고 짜증 엇비스무리한 감정이 솟구치려는걸 애써 누르며 매니큐어를 덜어낼때는 속에서부터 덜어내라, 매니큐어를 바르는 방향은 옆이 아니라 위부터다. 매니큐어를 바를때 물감처럼 슥삭슥삭 왔다갔다가 아니다. 블라블라블라블라 잔소리 폭격을 날려댔다.

물론, 필요한 말도 있었을 수 있지만
한마디가 아닌 수마디의 말을 쏟아내었고,
그 말에 비언어적으로 답답함이 한치도 섞여 있지 않았을까.

말투 역시 강압적이고 통제적이고 지시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소 명령조의 말을 사용한다는 피드백을 (주로 남편으로부터) 듣기는 했지만 내 스스로 자각해본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MBTI를 듣고나니 명령조의 지시적인 말투를 굉장히 강하게 인지했고, 아이에게 지금껏 얼마나 많은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까 싶었다.ㅠㅠ

어쨋든 아이에게 매니큐어를 바르게 하면서도 표면으로는 아이에게 자율성을 허용하고, 경험치를 쌓아주는 굉장히 멋진 엄마처럼 보였을진 몰라도 정작 이러면 안돼. 저러면 안돼.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라는 명령이 수도없이 쏟아져내렸다.

그러고 양치를 할때도 내가 지시한 '이하고 있어라.' 라는 지시를 아이가 지키다가도 할 말이 있던지 잠시 입을 뗐고 그 사이 칫솔은 아이의 턱으로 삐져나오며 얼굴을 더럽혔다.
나는 "내가 이 하라고 했는데 니가 내 말을 듣지 않아 턱에 묻었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아이에게 1.명령
2.지시를 어김으로서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음을 근거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3.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내 지시에 따르지 않은 너의 잘못
으로 아이를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어떠한 감정도 섞지 않은 무미건조한 말이었긴 하지만 비언어적 느낌을 떠나 언어적으로 논리적, 합리적, 옳고 그름, 지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전 소변을 보는 아이가 화장실에 신발을 신지 않고 들어갔고, 다시 한번 짜증이 났다.
평소 욕실에서 신발을 신으라는 나의 지시를 아이가 계속해서 어기는 것에 대한 짜증, 신발을 신는 것은 옳은 것 이라는 나의 판단, 기준, 잣대, 등등으로 아이에게 또 한번 "욕실에서 신발 신으라고 했지" 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고작 몇시간 밖에 되지 않은 상황동안 너무나 많은 ESTJ의 특성들을 스스로 자각하고 나니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잠자리에 들기전, 아이와 누워 아이에게 문득 사과를 했다.
"엄마가 명령조로 자꾸 말하는것 같아? 엄마도 몰랐는데 오늘에서야 깨달았어. 지금껏 명령하듯 말해서 미안해. 완전히 없애는건 너무 힘든 일이고 불가능할거니까 엄마가 앞으로는 줄여가도록 노력해볼게. 명령조로 말해서 속상하거나 상처받을때마다 엄마한테 알려줘." 라고 사과를 했다.
또 오늘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을 이야기하며
"엄마가 너무 강하게 화를 냈다면 미안해.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면 미안해.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는데 니 마음에 상처 줘서 미안해. 엄마도 신이 아닌지라 아예 화를 내지 않는건 불가능한데, 그래도 이제는 엄마가 깨달았으니까 안그러도록 노력해볼게. "
하며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ESTJ가 선천적인 나의 선호도라고 하니, 사실 기질에 가까운데 이것을 바꾸는건 거의 불가능 하다 본다.
실제 TCI검사에서도 MBTI와 매우 비슷한 결과가 나왓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자각하고, 인지하고, 다른 열등기능(내 경우는 F)을 더 보강하는 노력으로 이것의 강한 특징들을 조금은 보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STJ 엄마라 너무 미안하다ㅠㅠ
INFP엄마였음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ESTJ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많다.
특히 업무적 상황에서 최강이라 생각한다.

근데...
육아에서는 진짜 병맛인것 같다.
아이에게 몹쓸 짓을 너무 많이 한다 ;;

그래도 나...
진짜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내가 나를 직면하고, 좀 더 보강하려 노력하고,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이악물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아이에게 ESTJ버전으로 화내고 혼내고 명령하다가도 금세 깨닫고는 INFP모드로 사과하고 반성하고 대화하고 안아주니까.
노력하고 있으니까.
팔땡이도 알아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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