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층에 사는 팔땡이보다 한살 어린 동생이 엄마의 시야를 벗어나 친구와 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엄마와는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던 와중, 멀리서 비명에 가까운 울음 소리가 들렸고 그곳에는 그 동생이 다리에서 폭포처럼 흐르고 있는 피를 감당하지 못해 절뚝대며 엄마를 찾고 있었다.
너무 놀란 그 아이 엄마와 주변에 있던 아이를 아는 다른 엄마들이 몰려와 아이의 다리를 지혈하고 피를 닦고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다독이며 아이를 우선 진정시키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너무나 당황한 나는 큰 리액션을 하며 "어머어머 어쩜 좋아 어떡해!!!" 하며 나의 감정을 겉으로 마구 분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2~3분정도가 지나 '아차 나의 반응에 아이가 겁을 더 먹을 수 있겠다!!" 를 깨닫고 나의 강한 반응을 통제했다.
타인에게 관심을 끌기 위함도,
나의 기분을 알아달라거나,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해서 리액션을 크게 하는게 아니었다.
기질상 리액션이 크고, 행동도 크고, 목소리도 큰 사람이라 누군가에겐 연기를 하는듯 보일 수도, 나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호들갑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 남편은 호들갑 좀 떨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사실 나의 기질에 대한, 성격에 대한 '비정상적' 이라는 느낌을 내포하기 있었기에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말이었다.
내가 연기하는 것도 아니고, 늘 갑작스럽고 깜짝 놀랄 만한 상황에서, 당황했을때 튀어 나오는 제스쳐였다.
기질상 보이는 나만의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생존전략이었고, 우리네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테니 추측컨데, 사냥감을 발견하거나 적을 맞닥뜨렸다거나 어떠한 곤경에 빠졌을때 얼음이 되거나 빠른 도피를 하기보단 강하고 큰 반응을 보여 주변의 도움을 유도했을 유형의 사람들이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어쨋든 그렇게 남편이 못마땅해하는 호들갑을 떨다 아이를 위해 강한 반응들을 통제했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진정 시킨다거나, 엄마를 걱정하는 듯한 상대방의 감정을 향한 배려를 보이고 있을때, 나는 그를 향한 걱정어린 시선과 말보다는 빠르게 폰을 만지고 있었다.
동네에 꿰맬 수 있는 병원이 어디인지 후기를 찾아 데이터를 모으고, 정형외과, 성형외과, 피부과, 응급실 중 어디로 보내는 것이 추후 결과가 깔끔할지를 찾고, 근처 성형외과 중 후기가 좋은 곳을 빠르게 찾아 전화를 돌렸다.
국소 마취가 필요한지,
당장 가면 대기없이 바로 꿰맬 수 있는지,
5시20분이었기에 병원 접수시간을 조금 연장해서 대기해줄 수 있는지,
정형외과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전화를 돌리고 아이 엄마에게 빠르게 정보를 넘겼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들쳐매고 뛰었고, 나는 옆에서 병원까지 갈 차가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가는지 재차 확인하고 (없으면 내 차로 가려고 했다.)
이후에도 추가로 다른 병원들을 찾아 계속해서 정보를 넘겨주었다.
굉장히 ESTJ스러운 신속하고 현실적이고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판단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을 읽고 있기보단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도움이 될법한 방법을 빠르게 모색하고 판단했고, 엄마와 아이의 감정을 매만지고 있을 시간에 뒤에서 빠르게 양질의 정보를 취합해서 넘겼다.
아이 엄마 역시 지혈을 한다고, 너무 당황해서, 아이를 진정시키느라 미처 알아보지 못한 정보들이었고, 본인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너무 당황했는데 알아봐줘서 고맙다고 처치가 다 끝난 이후에 따로 연락이 왔다.
내가 알려준 병원에서, 접수 마감시간을 조금 초과했겠지만 병원에 미리 전화를 넣어둔 상태였기에 빠르게 처치를 받고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했다.
늘 F형의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타인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고 관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들이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늘 n형의 사람들이 부러웠다.
당장의 나무를 보기보단 숲을 내다보고 멀리 볼 줄 아는 그들이 부러웠다.
늘 p형의 사람들이 부러웠다.
적은 정보로 빠르게 판단을 내리는 나와 달리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수용하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 그들이 부러웠다.
늘 i형의 사람들이 부러웠다.내향적이라라 섣불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 진중함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돌아보고서 느꼈다.
나는 외향적(E)이었기에 타인의 사건에 개입해서 내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고, 현실적(S)이었기에 당장의 현상을 똑바로 직시하고 가장 최적의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인지적(T)이었기에 감정을 매만지고 있던 사람들 틈에서 혼자서 이성적으로 해결방법을 찾아 취합할 수 있었고 판단기능(J)이 있었기에 신속하게 정보를 판단하고 빠르게 정보를 넘길 수 있었다.
이래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아이를 안심시킬 누군가는 분명 필요했다.
엄마에게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이도 분명 필요했다.
그리고 위급 상황에서 가장 실질적인 최적의 방법을 찾아 빠르게 처치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이도 필요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다른 유형에 비해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딱딱한 AI같은 모습이라 열등하게 생각했던 ESTJ가 맡았고, 너무나 신속한 처리로 과다출혈되지 않도록, 빠르게 처치하지 못해 상처가 더 심해지지 않도록 해결할 수 있었다.
얼마전 MBTI를 듣다 같은 유형들끼리의 그룹회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싸움이 나는 줄 알았다.
너무나 강한 유형의 사람들끼리 모이니 이것이 마치 싸움이 날 것처럼 강한 충돌을 일으켰고, 발표자를 정하는데 오디오를 끄고 비디오를 꺼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유형에 속해있던 나는 내 성격이 역시 그렇지 하고 나의 성격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나의 의견을 강하게 관철시키고,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다보니 마찰이 많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학교 동기모임을 주도 했다.
코로나시국에 입학 후 한학기를 내내 비대면으로 수업했고 그러다보니 서로 얼굴 한번 본적없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온라인상에서 서로 낯을 가리며 만날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는데 ESTJ의 헤쳐모여는 처음 보는 동기생들을 한자리에 모았고 조직을 단결시킬 수 있었다.
이래서 세상엔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같은 유형끼리는 너무나 강한 충돌을 일으키거나 서로가 너무 회피하다보니 결속되기가 쉽지 않지만 이러한 유형도, 저러한 유형도 있으니 조직에서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역할을 하나씩 맡아 강한 충돌이나 강한 회피(종종 약한 충돌과 회피는 있겠지만)를 보이지 않고 톱니바퀴 맞물리듯 맞춰져 돌아갈 수 있는거구나 싶었다.
내가 조직을 모을 수는 있지만 개개인에게 신경쓰지 못하는 것을 또 다른 유형의 동기들은 한명한명 신경쓰고 보듬을 수 있었고, 또 다른 유형은 내가 빠르게 진행한다고 놓쳤던 부분들을 옆에서 서포트해주며 구멍을 메꾸어주기도 했다.
성격에는 상황에 따라 약점이 되는 부분도, 강점이 되는 부분도 충분히 있지만 그러한 부족한 부분을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메꾸어주기도, 또 내가 그들의 부족함을 메꾸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말 참 많이도 들어왔던 말이지만 요즘처럼 와닿았던 적이 있던가.
인지가 빠른 나도, 자신을 잘 드러내는 나도, 원리원칙이 중요한 나도, 분명 사회에 좋은 쓰임이 될 수 있고 조직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사람들 역시 나만큼이나 중요하고 꼭 있어야 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