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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Oct 03. 2022

신체적 우월감


나는 신체적 우월감이 있었다.
아니 있다.
과거형으로 끝내고 싶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나의 언행을 볼때면
무의식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있음에
흠칫 놀랄 때가 있다.

며칠 전, 우리집에 아이의 사촌들이 놀러왔었다.
아이의 사촌은 키가 작은 편이었고,
아이의 엄마인 동서가 키에 대해 늘 걱정을 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도 팔땡이의 키를 늘 염려한다.
팔땡이가 작은 키는 아니나,
나의 유전에 비하면 작은 키이기에
늘 남편쪽 유전자를 탓하며
아이 키를 걱정하곤 했다.

동서는 얼마전 다녀온 성장클리닉에서
아이의 예상 키가 158이라
성장주사를 권유받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팔땡이의 예상키가 168이지만
내 성에 차지 않는다고 나 역시 키가 걱정이라 대답했다.

동서가 듣고 싶던 답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대답은 오히려
동서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다.
아무 생각없이 나의 욕구대로 막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집안의 유전자를 탓했다.
아이 아빠가 유치원 시절에 키가 엄청 작았더라.
어머님, 아버님이 작으니 어쩔 수 있나.
근데 어머님은 팔땡이가 아빠 닮아 키가 클거라고 매번 말씀하신다. 어이가 없다. (이건 사실 매번 반감이 든다. 아이 아빠가 딱 평균키지 절대 큰 키가 아닌지라. 그냥 대답없이 썩은 미소를 짓곤 하지만 속으로는 늘 "아니에요 어머님 아니라구요!!!" 를 외치곤 한다.)
라는 말을 동서에게 쏟아내었다.

아이들 성장에 관한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어쩌다보니 나의 어린 시절 키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초5 1학기땐 158을, 초5 2학기땐 162를 찍었고
이미 3~4학년때부터 나는 아동복 매장에서 옷을 사지 못했다.
라는 이야기였다.

그냥저냥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음하고서
동서가 집으로 돌아간 후 곰곰히 생각해봤다.

정말 미성숙한 자기자랑이 아닐 수 없었다.
또 동서와 남편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말이었다.

상담을 하며 자기 자랑이 많이 줄었는데,
왜 갑자기 나의 우월함을 보여주려는 욕구가 생겼을까 곰곰 고민해봤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신체적 우월감이 있었다.
외갓집 식구들이 키가 다 큰 편이고,
나는 천운으로 외갓집의 유전자를 물려 받아
여자치고 꽤나 큰 키를 소유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줄을 서면 늘 맨 뒷쪽에서 놀았고,
늘 또래보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날 보며
어른들의 칭찬은 (지금 생각해보면 칭찬받을 일인가 싶다. 내가 노력해서 큰게 아니라 저절로 큰건데.)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초등학령기가 되면 아이들의 신체적 우월감이 상당히 중요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나는 팔땡이에게 인라인이며, 줄넘기며, 배드민턴이며, 아이의 운동능력 및 신체적 우월감을 위해 많은 것을 제공하는 편이다.

나 역시 늘 또래보다 큰 키로, 우월한 신체로 자신감이 충만했다.
키가 크니 다른 아이들보다 빨라 늘 달리기에서도 1등을 했고,
힘도 웬만한 여자아이들보다 셌던 기억이 난다. (팔씨름 같은 것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나의 신체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우월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것은 신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 자신감은 교우관계나 여러 활동들에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신체적 우월감이 결국 원천이 되어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쳤다.

성인이 되어서는 나보다 키큰 여자들을 찾아보기가 쉽진 않았다.
어쩌다 나보다 키 큰 여자가 지나가면 나는 위축감을 느꼈고,
키에 대한 우월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3년전 상담때 상담사에게 신체적 우월감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상담사는 풉!! 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너무 재미있다며 그냥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겨버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어 보질 못했다.

신체적 우월감이 살아가며 많은 것들의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덕분에 너무나 자신감 넘치게 살아왔으나,
이 우월감이 부정적 방향을 향할 때면
나의 신체적 우월감으로 타인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발현되고 있다.

인생에 키가 크고 작은게 다른 것들보다
우선되는 기준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키는 사람들의 많은 특성 중 하나일 뿐인데
키가 크면 우월하고, 키가 작으면 열등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나는 동서와 아이의 사촌언니, 남편을 통해
나의 우월감을 과시하고 싶었나보다.
유치하고도 미성숙한 방법으로
나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또 당신들의 우위에 있음을 알리고 싶었나보다.
나보다 하등하고 열등하다는 생각.

나보다 키가 작다고 해서,
절대 나보다 열등하거나 하등하지 않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음에도
무의식적인 나의 욕구가
이런 유치한 방법으로 그들의 위에 서고 싶었나보다.


키 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에서도
인간의 우월함과 열등함을
나는 계속해서 구분짓고 있었다.

이 우월감이 결국은 열등감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열등하다 느끼는 부분을
나의 우월한 부분으로 덮으려는 시도임을.
나의 열등함을 우월함으로 가리려는 시도임을.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임에도.
그 누구도 완전한, 완벽한 존재일 수 없기에
어느 누가 우월하다 할 수 없음에도
나는 나의 열등함을 우월함으로 덮으려했나보다.

인간은 어떠한 특성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든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존귀한 존재임을
나는 늘 가슴에 새기면서도
무의식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미숙한 부분들이
종종 튀어나오곤 한다.

우월감에서 벗어나자.
나란 인간은 다른 이들보다 우월한 존재도,
또 열등한 존재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평등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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