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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Jul 12. 2022

배달 알바 중 음식물 쓰레기차와 부딪혀 팔에 금이 가다

비참함과 서러움의 골든크로스

원체 긍정적인 나는 나름 현실적 원룸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잠든 밤이 되고, 남편이 새벽까지 배달을 하고 있는 그 시간이 되면,  불면증에 잠을 통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때 나의 현실에서의 근심 걱정의 도피처는 요리였다. 결혼하고 요리에는 취미가 없기도 하였고, 즐기는 편도 아니었기에 전라도 엄마를 둔 사람치고는 요리 실력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때를 기점으로 요리를 매우 즐기게 되었다. 쌍둥이들이 한창 이유식을 할 시기였기에, 하기 싫어도 반 강제적으로 주방에 있는 시간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요리실력도 늘어갔다. 

이제는 '역시 전라도 손맛이네~!'라는 소리를 가~끔은 들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역시 요리든 무엇이든, 계속하면 는다.  


각종 야채들을 잘게 잘게 썰고 있으면 머리를 가득 채웠던 불안과 근심 덩어리들은 잘게 썬 양파나 당근 조각으로 잘게 잘게 쪼개어진다. 사각사각~! 탁탁~! 썰리는 그 리듬감은 얼마나 경쾌한가? 

딱히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던 그때는, 먹을 때라도 기쁨을 찾자는 의미에서 소박하지만 맛있게 요리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각종 요리 레시피도 많이 찾아보았고, 그러던 중 나중에 장사까지 하게 된 나만의 떡볶이 소스도 개발하게 된다. 




나름 현실을 받아들이며 육아에 집중하던 그때 또 한 번의 현타가 찾아왔다. 

새벽. 몇 시 인지도 기억나지 않은 늦은 새벽에 남편이 오른팔에 피를 뚝뚝 흘리며 들어왔다. 

깜짝 놀라 "어떻게 된 거야?!" 물으니, 

우물쭈물하던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차 하고 부딪혀서 오토바이가 넘어졌어..."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머릿속에는 쓰러져 여기저기 널브러진 음식물 찌꺼기들과 거기서 나오는 악취 속에 엎드러진 남편의 모습이 한 편의 사진처럼 생생하게 펼쳐졌다. 짜기라도 한 듯 그날에는 비까지 왔으니 그 악취가 어떠했을까? 그 순간 화가 나서 되레 남편에게 화를 내었다. 

너무 슬프면 화가 나는 것일까?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0.1초면 눈물이 떨어진다. 소름 끼치게 슬펐던 순간이다. 극적인 효과를 더하듯 비까지 내리다니, 비참함에는 바닥이 없구나.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층이 또 있었네! 


크리스천인 나는 한동안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었다기보다 머릿속이 온통 뿌연 안개로 가득 채워지니, 더 이상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나 뭔가를 바라는 기도의 공간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모든 생각의 회로가 멈춘 듯했다. 


남편은 며칠 병원에 다니며 배달일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뼈 조각이 안에서 부러진 것 같은데 자연적으로 붙기를 기다리는 게 좋겠다'라고 하였다. 

뼈 이외에 팔의 피부가 다 쓸려서 전체적으로 커다란 딱지가 붙고 떨어지고, 새살이 돋기까지 나의 멍한 상태는 계속되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 '겸손'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딱히 겸손에 관한 일화가 아니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부패되어 냄새나는 음식물쓰레기.

가장 낮고 더러운 이미지 중 하나이지 않을까? 

오토바이 배달을 하지 않았으면 자정을 넘긴 그 새벽시간에 나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시간에 나갔더라도 차를 타고 있었다면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고..


'사람들이 싫어하고 냄새나는 음식물 찌꺼기들은 그때에 버려지는구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음식물쓰레기 수거하시는 분들도 참으로 힘들겠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움직이는, 야간 배달 오토바이와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 

나에겐 둘 다 눈물 난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어려움도 내일처럼 서럽게 그려진다. 


나의 가장 낮아진 시간에, 마주하면 코를 틀어막고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 음식물쓰레기와의 충돌은 나에게 '겸손'이라는 두 글자를 안겨주었다. 나는 항상 잘 살 것 같지만, 언제라도 사람들이 피하고 외면하는 자리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너무도 잘 안다. 그때 내가 비참함을 크게 느꼈던 것도 아직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직업은 소중하고, 모두 각자의 삶을 위해 고군분투해 가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에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그곳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의 성실함이 존경스럽다. 


나는 아직도 간간이 들리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애잔하다. 성실히 일하시는 그분들 때문이 아니다. 

그때의 나와 남편의 모습이 참으로 서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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