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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Jul 12. 2022

완전히 무너진 자율신경계

돈이 급하다. 평생 이렇게 불안정하게 살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2살밖에 되지 않은 쌍둥이가 있다. 잠시 취업도 해보았다. 3개월간 건설 관련 낙찰 대행회사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운이 따랐는지 짧은 시간에 꽤 큰 공사 건 낙찰도 시켰다. 더 있어 달라고 했지만 낙찰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라 관련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조금 더 안정적인 직업을 생각하자니 역시 공무원이 떠올랐다. 대학 때도 공부를 한 적이 있으니 다시 할 수 있을 듯했다. 이번에는 더욱 절박하므로.


단기간에 합격하고자 계획을 세웠으나 밤 낮 쌍둥이 육아를 해야 하므로 시간이 부족했다. 따져보니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쌍둥이들이 자고 있는 시간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10시쯤 재우고 새벽 1시 반에 일어나 공부를 하기로 했다. 새벽 1시 반에 일어나기로 한 것은 그때가 남편이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남편 들어오는 시간을 알람 소리 삼아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남편은 나름대로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조용히 들어왔으나 예민한 나는 바로 눈이 떠졌다. 그렇게 새벽 1시 반에 매일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았고 눈을 감고 있으면 지금 상황과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신은 너무 또렷해졌다. 그러면서 불면증도 생겼다. 어차피 공부도 해야 하고 잠도 쉽사리 들지 않으니 그 시간에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냥 자려고 누웠을 때에는 그리 오지 않던 잠이 공부를 결심하고 열심히 하려니 쏟아지는 이유는 뭘까? 불면증이라고 여겼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잠이 왔다. 그러면 커피를 계속 마셨고, 그래도 잠이 오면 서서 공부를 했다.


공부의 장소는 작은 주방의 식탁. 그마저도 절반은 전자레인지에 내어준 좁은 자리이다. 거기밖에 자리가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 낮에는 포스트잇에 암기할 것을 적어서 식탁 앞의 벽에, 설거지할 때 눈이 닿는 주방 수납장에, 화장실에, 냉장고에, 집안 곳곳 눈이 잠시 머무르는 곳에 붙여 놓고 외웠다. 이 효과는 꽤나 좋았다. 절박하니 더 잘 외워지는 듯하다. 대학 때보다도 머리가 더 똑똑해진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열정이 강해 순조로워 보였으나 며칠을 지속하니 턱없이 부족한 수면 탓이지 몸 여기저기에 이상이 왔다. 한 달 가까이 지속하자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원래도 두통을 달고 살았던 터라 익숙하게 두통약을 먹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두통약이 통 효과가 없었다. 용량을 더 많게 하여 두통약을 털어 넣어도 듣질 않았고 누워있어도 머리가 아팠다.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았다. 무슨 사진인지는 자세히 모르나 빨간색과 파란색 등 색상으로 나의 몸의 상태가 나와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색상으로 나타난 나의 몸의 흐름은 정상인과 달랐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자율신경계가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라고 했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지며 약을 지어먹고 공부는커녕 한동안 요양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호되게 아프고 나서 한동안 책만 봐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이 아닌가 싶다.

육아로 몸이 지쳐 있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상태에서 평균 3시간 정도만 자고 공부를 한 것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2살. 쌍둥이. 이 둘을 합체한 노동의 강도를.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는 육아의 절정기에 너무 무리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나는 할 수 있고 내 몸도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완벽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지금은 그 일이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그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다. 그때는 그리도 상황이 무섭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두려움도 많았고 그 두려움 때문에 잠도 이룰 수 없었지.


도전정신과 열정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지금은 안다. 지금은 하라고 멍석을 깔아놔도 그때의 나의 열정과 에너지와 같지는 않겠지. 그래서 20대 청년의 에너지와 30대의 에너지, 40대가 다른 모양이다. 자칫 패기 없어 보이고 잔잔해 보이기만 한 그 나이 든 사람들 이면에는 누구보다 열정과 에너지가 가득했던 조금 더 젊은 시절의 ;나'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소위 말하는 꼰대층과 젊은 층의 견해 차이는 조금만 이해를 해보면 좁힐 수 있을 듯도 하다. 꼰대로 표현되는 기성세대는 나의 젊은 시절을 조금만 생각보고 젊은 층은 곧 있을 나의 미래임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 분리되지 않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의 대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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