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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Jul 12. 2022

보증금까지 뺏기고 친정엄마에게 더부살이

당시 살고 있는 빌라는 보증금 천만 원에 38만 원 월세를 주고 살고 있었다. 이것도 월세 40만 원이던 것을 사정사정을 해서 2만 원을 깎고 들어간 것이다. 빌라에 산 지도 어느덧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만기가 2달 반을 조금 남긴 시점,  유독 남편을 감시 아닌 감시하며 지내온 채무자 중 한 명이 급하다고 빌라 보증금 천만 원 중 500만 원이라도 달라고 독촉을 하였다. 그 얘기를 듣자니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 


처음에는 정말 야박하게만 들렸다. 그런데 본인도 급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우리의 마지막 기본 생계금인 보증금. 을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요구하는 대로 보증금을 내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만약 집주인이 500만 원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어쩌나? 보증금 500만 원으로 이사를 갈 수나 있을까? 이사를 가게 되면 이사비용이나 부대비용은 어떻게 하지?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제 진짜 갈 때도 없는 것인가?


다행히 집주인은 왜 그런지 꼬치꼬치 캐묻고 뭔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으나 그러겠노라고 하였다. 보증금 500만 원을 돌려받고 대신 월세는 40만 원으로 올리는 조건이다. 한 동안 잘 지내오다 그즈음 다시 희망이 없어지는 것 같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보증금까지 가져간 그 사람도 원망스러웠다. 그 사람도 급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니.. 

  

무기력하게 보내던 중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집으로 내려오라고. 한줄기 햇살이 비추는 순간이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그러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하고 있는 배달일을 그만두고 갑자기 친정에 내려가 할 일도 없을뿐더러 여기저기 채무자들의 시야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같이 바로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먼저 친정으로 내려가고 두 달 반을 남편 혼자 그 집에 머물게 되었다.


채무자들과 함께 있던 그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니 공기부터 달라지는 듯했다. 혼자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무너진 그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니, 뭔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듯했다. 또 곁에는 의지할 수 있는 엄마가 있으니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든든했다. 든든한 지원군인 엄마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친정엄마는 시내에서 식당을 하고 있으면서 식당 근처에 새 집이 하나 있었고, 조금 더 떨어진 시골에 집이 하나 더 있었다. 엄마는 곧이어 올 사위가 불편할까 봐 시내 근처 새 집을 온전히 우리가 사용하게 하셨고 엄마와 아빠는 떨어진 시골집에서 지내겠다고 하셨다. 


친정엄마는 무너진 남편에게 무안을 주거나 타박을 준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남편을 존중해주고 배려해 주셨다. 일을 겪고 보니 이렇게 사려 깊고 사랑이 깊으신 엄마에 대해 다시 한번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혼하면서 가끔은 엄마에게 서운한 점도 있었지만 그것은 나의 마음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아낌없이 내어준 엄마의 사랑으로 나는 나머지 삶의 여정도 반드시 잘 살아낼 것이다. 


짐 정리를 어느 정도 하고 가장 먼저 쌍둥이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등록을 하였다. 다행히도 가까운 곳에 괜찮은 어린이집이 있었고 원체 낯가림이 없던 우리 쌍둥이들은 이내 적응을 하였다. 


새로운 곳에서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여전히 그곳에 남겨진 남편은 혼자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살이 너무나 많이 빠져 있었다. 라면 하나로 하루 한 끼를 겨우 때우고 배달을 하러 나갔고 새벽에 들어오면 피곤에 지쳐서 잠이 들고.. 그렇게 단순하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지냈다고. 가족이 옆에 없으니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혹여 시간이 나면 누워서 무기력하게 무심한 천정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 천정 속에는 귀여운 쌍둥이도 있고 나도 있고, 답도 없는 커다란 돈의 문제도 있었다. 나중에 만났을 때는 무려 11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져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남편이 그렇게 호리호리해 보이기는 연애 때를 포함하여 남편을 만나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넷이 같이 있을 때는 어렵지만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살을 부대끼며 힘든 현실을 잠시라도 잊곤 하였다. 아장아장 걷는 쌍둥이들을 보면 그 순간은 행복했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쌍둥이들과 함께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그 집에는 이제 잠시 눈을 떼는 사이 옷장 속에 들어가 장롱문을 떼어먹을 일도, 티브이를 흔들어서 티브이가 넘어질 일도, 밥통 다이를 흔들어서 무너질 일도 없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그 작은 집에서 남편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깜깜한 새벽녘, 아무도 없는 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그 계단이 얼마나 길고도 무겁게 느껴졌을지... 전화로 느껴지는 남편의 목소리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어려워도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한다. 아니 어려울수록 더욱 함께여야 한다. 사랑하는 존재가 옆에 있으면 힘든 순간도 그 자체로 버틸 이유가 되고 힘이 된다.


남편이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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