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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Jul 13. 2022

4살 쌍둥이 동업자와 떡볶이 장사

친정으로 오기 전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내려왔다. 바로 내가 개발한 떡볶이 소스. 이유식으로 시작한 요리에 대한 즐거움은 '장사를 해볼까?'로 이어졌고, 적은 비용으로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메뉴인 떡볶이가 타깃이 되었다. 떡볶이가 타깃이 된 이유는 불황일수록 분식을 찾는 사람이 많았고, 나를 비롯해 수많은 떡볶이 중독자들과 자라나는 예비 떡볶이 마니아층인 중고생들이 계속적으로 유입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나름의 사업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재료의 마진을 따져봤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식당을 하셨기에 식자재 마트에 자주 드나들었던 감으로 여러 식자재 마트에 돌아다니며 최저가 구매처도 확보했다. 


포장용기를 구매할 즈음, 하루는 길에서 붕어빵을 사 먹다가 붕어빵 사장님에게 "이 포장봉투는 어디서 구하시는 거예요?" 하고 묻자, 그 아주머니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옥션에 없는 거 없이 다 팔아요~"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보다 인터넷을 더 발 빠르게 이용하시는 그 힙한 느낌의 시원시원한 아주머니의 말이 맴돌아서 헛웃음이 나왔다. '맞아 인터넷에 다 팔지..' 그 붕어빵 사장님은 인터넷 구매처가 아닌 오프라인 도매처를 이용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이 정확히 빗나갔다. 요즘엔 다 온라인으로 산다. (이것도 몇 년 전 이야기..) 


4살 쌍둥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중간에 엄마 식당일을 돕고, 남는 시간에 혼자 떡볶이 사업 추진에 몰두했다. 남편은 그때 그 전 빌라 생활을 마무리하고, 친정에 내려왔으나 바로 이천과 인천 등 숙식제공 기업의 공장에서 일을 하여 주말에나 간신히 친정집으로 왔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 돈 벌 궁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싸게 나온 가게 자리를 알아보다가 그것도 부담이 되어 '비용을 더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남편이 배달을 할 때 한 가게에서 여러 가지 사업자를 내고 장사를 한다고 얘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간판은 치킨인데 족발집도 하는 그런 식이다. (요즘에는 매우 일반적인 가게 형태) 

'그럼 엄마 식당에서 하면 되겠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속도가 더 빨라졌다. 장사를 하면 쌍둥이를 어찌할지가 걱정이었는데 친정엄마 식당이 신발을 벗는 좌식 형태여서 쌍둥이들을 좌식 홀에서 놀게 하면 되었다. 


전단지와 메뉴 구성 작업이 남았다. 친정집이 작은 도시인지라 떡볶이 경쟁업체들이 많지는 않았다. 당시 그곳에서는 1인분 2,500원 이런 식의 떡볶이가 많았지, 도시처럼 2~3인분 떡볶이가 많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할 것이기 때문에 싸게 여러 건의 주문을 받을 수가 없어서 한 번의 주문이라도 여럿이 먹을 수 있도록 큰 사이즈로 구성하고 세트메뉴로 팔 생각을 하였다.   


친정엄마는 8시쯤이 지나면 집에 가실 준비를 하신다. 시골이라 저녁 장사도 일찍 끝나는 편이다. 그때쯤 되면 쌍둥이와 나만 남는다. 애들이 있어 마감시간을 최대한 짧게 잡았지만 그래도 돈을 더 벌어야 했기에 경쟁업체 마감시간이 10시여서 나는 10시 30분까지 장사를 하기로 하였다. 홍보가 안되었기 때문에 조금이라고 늦게 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분명 주문이 들어오리라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매직타임 10시가 되면 주문전화가 마감 때까지 들어왔다. 


배달업체와 계약을 맺고 휴대용 카드키도 준비했다. 카드 주문이 많으면 친정엄마의 가게 매출이 많아져 세무상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최대한 현금 매출을 끌어내려 생각했다. 그래서 현금 주문을 하면 쿨피스 500ml를 준다고 홍보를 했는데 덕분에 현금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이제 본격적인 떡볶이 장사다. 둥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른 오전에 재료 준비를 해놓는다. 가게의 틈새 공간에 포장용기를 잘 세팅해두고, 냉장고에도 나의 자리를 마련했다. 엄마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중간중간에는 가게 일도 더욱 열심히 도왔다. 그러다가 내 핸드폰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떡볶이를 만들어서 팔았다. 바쁘지 않고 근처면 내가 경차로 직접 배달을 하기도 하고, 주말이면 남편이 해주기도 하였다. 전단지에는 나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적어놨다. 따로 전화를 개통할 비용도 아깝고 가게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것은 본 식당에 피해가 될 것 같았다. 그러자 문자로도 주문이 들어왔고, 메뉴에 없는 디테일한 주문이 들어오기도 하였다. 그러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에 맞게 친절하게 응대해 나갔다. 노트에 주문 건 별로 특이사항을 적어두었는데 두 번 주문, 세 번 주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떡볶이는 한겨울이 성수기다. 연말이 가까워 눈이 펑펑 오는 밤, 주문도 갑자기 많이 쏟아져 들어왔다. 배달업체를 통하면 배달이 너무 늦어질 거 같아,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떡볶이를 만들고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길을 등줄기에 땀이 나게 긴장하며 배달을 하였다. 배달 중 전화로 주문까지 들어오면, 정말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만들고 배달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마감이다. 아이들은 미쳐 돌볼 새도 없이 시간이 지나버린다. 지금 생각하면 4살 쌍둥이들만 내버려 두고 배달을 나다니다니.. 그런데 신기하게 아이들이 울지도 않고 자기네들끼리 잘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 하늘이 내려준 효자다.


그렇게 쌍둥이들과 마감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11시가 훌쩍 넘어 있다. 집에 오자마자 쌍둥이들을 목욕시키고 재울 때쯤 되면 12시가 되어 있다. 이만한 아이들은 일찍 자야 하는데.. 안 그래도 이른둥이로 8개월 만에 태어나 또래보다 훨씬 작은 아이들이다. 때때로 미안함에 곤히 잠이 든 아이들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어른들은, 엄마들은 이렇게 살아갔겠구나.. 어른의 삶의 무게를 느낀다. 착하게 자고,  때도 별로 쓰지 않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은 정말 때를 쓴 기억이 거의 없다. 왜 그런 것인지.. 


밤에 혼자 떡볶이를 파는 것은 무섭기도 하다. 본래 겁이 많은 편인데 언제 이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상황이 나를 자연스레 용감하게, 거침없이 만들어 간 모양이다. 가게도 도로변이 아닌 살짝 안으로 들어온 곳이라 적막한 겨울밤에는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지만 홀에서 꼬물꼬물 놀고 있는 4살 쌍둥이라도 함께 있으니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든든했다. 쌍둥이들이 나를 지켜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꼬맹이들은 매일 밤 나의 든든한 동업자가 되어 주었다.   

 

친정엄마 가게에서 하는 떡볶이 장사는 내게 현금을 안겨주었고, 현금이 항상 주머니에 있으니 많지는 않지만, 뭔가 보험에 든 기분이었다. 그래서 몸은 고단했지만 장사에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또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 곧이어 또 이사를 가게 되는 일이 벌어지며 나의 귀여운 동업자 쌍둥이들과의 떡볶이 사업은 여기서 접게 된다. 


하지만 내 떡볶이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훗날 남동생이 서울에 창업한 가게의 메인 메뉴이자 효자메뉴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 잘생긴 것이 특기인 나의 남동생은 꽤나 장사를 잘해나가고 있다. 삶의 어려운 가운데 뭐라도 해보려고 치열하게 시도를 해 봤던 것이 지금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도움이 된나디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름도 당찬 '도도한 떡볶이' 나의 첫 개인 사업. 정신없이 달려온 또 하나의 나의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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