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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Jul 15. 2022

나에게 욕을 가르쳐 주고 떠난 아버지

친정에서 사계절이 지났다. 남편과는 계속 주말 부부로, 나는 엄마 식당일과 떡볶이 장사를 하며 초원반 4살 쌍둥이들은 5살이 되었다. 그럭저럭 단순하면서도 성실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던 중 늦은 오후,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아빠가 돌아가셨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대학 때 이혼을 하셨다. 아빠는 항상 술을 마셨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배에 복수가 차오르고 간경화증을 받아 얼마 못 살 것이라 하셨다. 그런데 마법처럼 간이 재생되었고 불사신처럼 아빠는 내가 아이를 낳고 5살 아이의 엄마가 될 때까지 사셨다. 그때 나는 아빠는 정말 불사신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사실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술을 달고 사시고, 엄마에 대한 폭력을 일삼던 아빠는 나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아빠가 엄마와 동생들을 괴롭힐 때마다 나는 투사, 잔다르크가 되었다. 살기를 띤 눈을 장착하고 아는 욕은 모두 동원하여 손끝이 차가워지고 몸이 흔들릴 정도로 아빠에게 대항했다. 아직도 찰진 욕들은 내 안에 꿈틀거리는데 모두 아빠에게 배운 조기 교육 탓이다. 전라도 쪽의 특성으로 묘사가 눈에 보일 듯 디테일한 것이 특징이다. 뭐.. 몸 안의 내장기관을 분해하는 그런 식이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찰진 욕을 하면 애나 어른, 가릴 것 없이 눈이 저절로 살기를 띠게 된다. 가벼운 욕은 안된다. 디테일하고 감정이입을 제대로 해야 한다. 아빠에게 배운 것도 있긴 하구나.. 


아빠와 나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인가 대판 싸우고 연락을 안 하고 있는 때였다. 아빠는 우리 땅을 자기 형에게 헐값에 넘기고, 언제나 그렇듯 우리에게는 큰 소리다. 자신의 처자식보다는 술 취하고 이혼당한 자신을 이용하기만 하는 형제들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이럴 때면 가족은 속이 터지는데 본인은 더 이상 얘기하지 말란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셨기에 친척들이 이렇게 찝쩍대는 것을 방어를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다. 우리들도 대학을 가며 모두 타지에 사니 아빠가 논문서며 땅문서를 어떻게 처리하든 제어가 안되었다. 이런 이유로 그때도 크게 싸우며 다시는 안 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말 안 보게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잘 지내셨어요?' 하며 어색한 듯 전화를 할 줄 알았는데, 걸려온 전화는 아빠의 사망 소식.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소리를 지르며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흐르는 눈물과 터질듯한 심장을 추스르며 가까스로 도착한 집. 거실로 들어서는데 안방에 외로이, 작은 밥상 앞에 쓰러져 있는 아빠의 발이 보였다. 살이라곤 없는 깡마른 발. 나는 거실 기둥을 붙잡고 평생 내보지 않은 소리를 지르며 오열했다. 도저히 그 방으로 가서 아빠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아빠는 피를 토하다 돌아가셨다. 술을 많이 먹고 간이 딱딱해지면 피를 토하는 모양이다. 마음이 여린 동생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하게 남편은 신속하게 119에 전화를 해서 장례식장으로 옮기게 했다. 맏이로서 아빠와 싸웠던 날들. 친척들과 싸웠던 날들. 그리고 집에서의 아빠의 마지막 모습. 아빠는 나에게 마지막을 부탁하시고 가신 게 아닐까. 나는 아직도 그 마지막 밥상 앞에 피를 토하고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가끔 길을 가다 아빠와 체구가 비슷하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사람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빠가 보고 싶다. 가끔 이상한 농담을 해서 헛웃음을 지게도 하고, 술 먹지 않은 날 아주 가끔 좋은 날도 있었다. 한 번은 갓 운전면허를 딴 20살 때 다른 차와 살짝 부딪쳐 덤터기 씔 뻔한 사건이 있었다. 상대 아저씨가 전화를 해서 겁을 주는데 나는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그때 갑자기 아빠가 내 전화를 가로채더니 그 필살기 쌍욕을 기관총처럼 퍼부어 대셨다. 그리곤 다신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눈물이 많은 외로운 남자였다. 엄마를 너무 사랑했는데 왜 폭력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에는 엄마를 그리워하다 울기도 하셨다. 지금의 나라면 그런 아빠를 안아줄 수 도 있었을지도.. 


나이가 먹어가니 한 명 두 명 내 곁을 떠나간다. 한 달 후 시아버님도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우리는 집도 없이 친정집에 더부살이했을 때다. 가장 가진 게 없을 때 물질과 바꿀 수 없는 가족마저 없어졌다. 불행은 노크도 하지 않고 연달아 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 앞에 대문짝만 하게 '사람 없음' 써놓고 싶다.    


곧이어 우리는 혼자 계신 시어머니와 살게 된다. 겉으로는 혼자되신 시어머니를 모신다는 허울 좋은 의미지만, 사실은 우리가 얹혀사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날까? 


이번엔 내 문을 어떤 놈이 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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